꿈을 쓰다

김두선 | 수필나무 제13호 기고 (2016)

by 김두선


‘무언가 해 준 것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네.’

얼마 전 방영된 어느 저녁 드라마 속의 한 대사이다. 요즘의 내 마음과도 너무나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드라마가 끝난 다음에도 나는 몇 번이나 이 대사를 되뇌었다.


내게는 서울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콘텐츠 개발 사업에 뛰어든 딸이 있다. 열심히 배워서 쌓은 지식을 기업정신도 없는 지주의 배 불리는 일에 그만 쓰고 싶다며 그야말로 머리 하나 믿고 맨손으로 뛰어 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직은 부모의 뒷바라지가

절실한 형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갈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런가. 살면서 절대로 하지 않을 일 중의 하나가 '후회'라고 생각했는데 마음 한 켠에 이것이 거스러미처럼 일어나 나를 자주 염장질 한다. 조금 더 아끼고 열심히 벌어둘 걸........ 이런 나에게 희망의 자락을 잡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은 바로 이 딸이었다.


어느 해 전 가을이었다.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책을 한 권 보냈으니 읽어본 다음,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했다. 어느 여류 작가의 저서였는데 딸을 응원한 엄마의 편지글이었다. 일주일 뒤 딸과의 통화에서 나는 내 생각과 참 많이도 닮아 있는 작가의 글이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딸은 책에 담긴 작가의 사고가 딸의 청소년 시절, 학교로 보내준 엄마의 숱한 편지 속에 이미 보았던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시대를 앞서 간 그 생각들이 그대로 묻혀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채근하듯 잼처 말했다. 엄마도 글을 한번 써보라고. 하다못해 단 한 명의 독자인 딸을 위해서라도 쓰라고.


조충소기의 내 글재주이지만 그 맹아는 어린 시절부터 보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군장병 위문편지를 보내면 꼬박꼬박 답장을 받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교지에도 내 글이 실렸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잡지사에 실린 원고가 인연이 되어 원고 써 주는 작업을 아르바이트로 삼았고, 이 일의 연속선상에서 평생 해온 학원도 말과 글이 병행되는 교육의 특성상, 글 쓰는 작업이 계속되었다.


실용문이 대부분이라 문학성 있는 글은 아니었지만 이런 나에게 글 쓰는 작업이 생경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내 이름으로 된, 내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은 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을까. 아무튼 그해 겨울 나는, 딸과 남편이 접수한 지원서에 밀려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고, 글쓰기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시작한 인문학 공부는 꿀맛이었다. 다시 20대를 회복하는 것처럼 행복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국문학에 빠져들수록 글쓰기가 더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액의 원고료를 받고 수기나 잡다한 실용문을 숱하게 써주었던 그 자부심은 사라지고, 막막했고 포기하고 싶었다. 결국 4년 동안, 무엇을 쓰고 싶은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나는 켜켜이 쌓인 인문학 리포트와 논문 한 편을 끝으로 공부를 마쳤다. '성적 우수 졸업’이라는 명분이 무색했다.



이런 나에게 마른나무에 물오르듯 생기가 도는 일이 생겼다. 수필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희붐하게나마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꿈을 쓰기 시작했다.


작은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는, 내 이름으로 된 수필집 한 권을 갖고 싶다. 강단에서 가르친 30년 세월을 나만의 노하우로 엮은, 자기 개발서 한 권도 쓰고 싶다. 가난에서 탈피하기 위해 공부를 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어느 여류작가의 대박 난 이야기처럼, 할 수만 있다면 대박 나는 소설 한 편을 써서, 끝까지 자녀들을 뒷받침하는 능력 있는 부모이고 싶다.


꿈도 뚱뚱하지.......

그래도........ 알 수 없잖아?


한번 해 보겠다는 의지와, 손을 놔 버리고 싶은 충동이 겨끔내기로 나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글을 쓰고 있노라면 글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내가, 살아있는 나를 향해 물긋하게 웃어 보이는 것만 같은 오묘한 느낌에 빠져든다. 도파민이 생성된다면 아마도 이러한 심리적 상태가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노자의 '去彼取此'라는 말이 있다. 미래에 있는 ‘저것’을 버리고 현재에 있는 ‘이것’을 취하는 것. 그렇다. 이루지 못하면 어떤가.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마음을 가셔 내고 다함이 없이 펼쳐지는 흰 사각의 프레임 앞에 앉는다. 불뚝 일어서는 두 손등 위의 파르스름한 핏줄. 나의 내부에서 긴장할 만큼 나를 흥분시키는 것. 지금 나는 설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