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점(斑點)

김두선 | 수필나무 제16호 기고 (2019)

by 김두선

얼룩덜룩 반점이 생겼다. 사람도 그러하지만 식물이든, 물건이든, 챙기고 관리해 주어야 제대로 유지되는 법인데 너무 오랫동안 팽개쳐 두었나 싶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삼층장 문고리 뒤편과, 손잡이가 닿은 부분마다 옻칠이 벗겨져 거뭇거뭇한 것이 눈에 거슬리기까지 한다.



나는 예스러운 전통가구를 좋아한다. 안방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 모두 전통가구인 것도 이러한 연유이다. 안방 문 측면은 나전칠기로 된 장롱과 화초 분리형 삼층장이 터줏대감처럼 나란히 지키고 있었는데,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이후 삼층장은 장롱과 헤어지게 되었다. 안방이 협소한 관계로 잡동사니 짐들과 함께 다른 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자연히 손이 덜 가고 소홀해졌다. 그 사이 문고리는 이처럼 녹슬어가고 있었나 보다. 문짝이 닫히는 것도 조금은 시원찮아 보인다.



손잡이에 생긴 얼룩이 영락없이 노인네 얼굴에 핀 검버섯처럼 보인다. 자주 닦아주지 않은 탓에 윤기마저 잃었다. 언제부터 이 고운 얼굴을 잃었을까. 한때는 가구용 왁스를 바르고 부지런히 윤슬 나게 닦아서 집에 오는 손(客)들이 탐내기도 했었는데... 문고리를 만지작대던 손이 무심코 내 이마로 옮겨진다. 이마 주위에 검버섯처럼 생긴 덴 자국들 때문이다.



바깥활동이 줄어들면서 요즘 나는 집안 살림을 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반찬을 직접 만드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런데 키가 짧은 탓일까. 조리를 하다 보면 프라이팬에서 튀는 기름방울이 매번 내 이마를 겨냥하고 달려든다. 젊은 시절이면 얼굴에 흉 졌다고 호들갑을 부릴 만도 한데, 잔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탄력을 잃는 나이 탓에 묻혀서,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두었다. 그런데 저 문고리에 생긴 반점처럼 남들 눈에 거슬려 보였던 것은 아닌지...



인생의 절반을 나와 함께 한 삼층장. 이 소장품은 가구공장을 하고 있는 한 학부모가 감사의 뜻으로 보내준 선물이었다. 마호가니 색 옻칠을 매긴 것에 덧띠가 둘러진 크고 작은 사각 안에는 동으로 만들어진 번득이는 화초 문양의 장식이 들어있어서 무척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게 보였다.



이 아까운 것이 녹슬다니... 얼룩을 제거하고 도색하는 방법이 없을까. 정보검색을 위해 이곳저곳 기웃대는데 그동안 모르고 있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소장하고 있는 삼층장의 가격이다. 선물 받을 당시, 가격에 대해 들은 바가 없어서 대충 몇 십만 원 정도이거니 여겼는데 예상과는 달리, 대여섯 배 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놀라웠다.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과분한 선물에 새삼 민망한 생각마저 든다.



재미난 것은 내 안에서의 심리적 변화이다, 거슬리게만 보이던 문고리의 반점이 갑자기 고풍스러워 보였다. 가격 상승으로 인한 삼층장의 위상은 새로이 높아졌고 물적 가치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조금 더 조신하게 다루었을 텐데, 하는 후회마저 일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고마움도 배가 되었다. 속물근성적인 간사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 나는 삼층장을 제대로 놓아야 할 자리 물색에 들어갔다.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 저마다 나름의 가치 기준이 있다. 그런데 고가구나 고택은 허름하게 낡을수록 더 멋스러워 보인다. 사람도 나이 들수록 더 멋스럽게 가치 상승하는 방법이 없을까. ‘피어야 봄이다’라는 문우의 수필 한 구절이 생각났다. 봄, 꽃, 청춘, 젊음, 성공, 희망... 삶에서 ‘피는’ 모든 것들을 떠올린다. 지금 나의 때에도 ‘피는’ 것들이 있을까.



가끔, 두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백발의 노부부를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존경스러움이다. 감동이다. 저녁 노을빛의 황홀함 같은 것이다. 젊은 부부의 등 뒤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안식의 여유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걸어오면서 비바람도 불고 폭풍우도 몰아쳤을 텐데.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지나가고, 슬픔과 괴로움이 두 사람 사이를 벌려 놓기도 했을 텐데. 숱한 균열과 아픔이 흉물스러운 반점처럼 생겼을 텐데, 꼭 잡은 손을 놓지 않고서 남은 세월 위를 유유히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늙어가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두 사람이 함께 써 내려간 시간의 역사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어느 노랫말처럼 늙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감’일진대 나의 이 가파른 시절도 ‘피는 것의 익어감’이라 우기고 싶다.



장롱과 함께 했던 삼층장을 따로 두었더니 저라서 시름에 겨워 홀로 낡아가고 있었던 것일까. 마치 곁을 내어주고 남아 있는 한 사람처럼... 부끄러운 속성이지만 지금에라도 제 가치를 알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수건에 약품을 묻혀 문고리를 열심히 문지른다. 외적인 것을 손본다고 낡은 것에 새로움이 더해질 리 있으랴. 그러하더라도 이마에 생긴 반점을 치료하러 조만간 피부과로 달려가 볼까 한다. 젊음은 나이에 밀려도 청춘은 열정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라면, 부질없다 여겨지는 일들도 열정으로 기름칠하며 고쳐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