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혼

김두선

by 김두선

낯선 곳을 가는 것은 자유로워서 좋다. 민낯으로 다녀도 의기양양이고, 추레한 옷을 걸치고 나서도 누군가와 마주쳐서 당황할 일이 없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종의 탈출이다. 이 자유를 누리며 ‘그’를 찾아갔다. 그의 시 몇 편을 음미하던 중, 불현듯 그의 시혼이 궁금해져서이다.


네이버 지도에서‘김수영 문학관’을 검색했다. 숙소인 광화문에서 도봉구까지는 약 한 시간. 한낮인데도 외길밖에 없는 도로는 내내 정체 상태였다. 드디어 목적지 부근이라는 교통안내가 나왔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문학관을 껴안듯 내려다보고 있는 도봉산 자락은 미세먼지인지, 봄날 아지랑이인지 알 수 없이 희뿌옇게 덮여서 멀찌감치 서있다. 방학동. 큰 건물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 시골 읍내쯤 돼 보이는 이곳은 분명 서울 이건만 이름처럼 한산했다.


의아한 마음으로 기웃대며 좁은 골목을 조금 휘돌아들었다. 4층 건물인 김수영 문학관이 보였다. 2013년 11월에 개관한 곳으로 주변 조경이나 주차장 없이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세워진 것이 그동안 찾아본 문학관 중 비교적 좁은 면적을 갖춘 곳이 아닐까 싶었다.


안내 데스크에서 팸플릿 몇 가지를 뽑아 들었다. ‘우리 시의 가장 벅찬 젊음’이라 소개된 글귀가 첫선을 뵌다. 그의 시 정신을 얼마나 캐갈 수 있을까. 자유와 해학과 저항의 참여시인 김수영. 그를 만나는 기대감에 조금은 설레며 전시실 안으로 들어섰다.


제1 전시실은 김수영의 연보 및 그가 살았던 시절과 활동 중심으로 그의 시와 평론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의 이십 대는 한국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온몸으로 겪어낸 시절이었다. 이는 불온한 시작품과 시학이 형성된 과정에 대한 설명 없는 설명이었다. 김수영의 시 세계에는 저항하는 힘이 있다. 젊음의 패기도 느껴진다. 솟아오르는 분노를 꾹꾹 누르며 이백 자 원고지에 세로로 써 내려간 그의 육필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그의 성품의 어떠함이리라.


반(反)하여 나의 이십 대가 어슴푸레한 기억을 헤집고 형체를 드러낸다. 그때는 박정희 유신 정권이었다. 걸핏하면 메케한 최루탄 냄새가 거리를 덮었고, 교문 앞에는 기다란 장총을 둘러멘 얼룩무늬 복장의 군병들이 일부 대학생의 저항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날이면 날마다 버티어 서 있었다. 가까이 지낸 친구 하나도 끌려갔다. 함께 불순분자로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연락을 두절한 그는 이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시절의 분노를 몇 줄 낙서로 긁적이곤 했지만 솔직히 ‘정의’라는 것에 앞장설 용기는 없었다. 다만 통기타와 막걸리에 울분을 타서 마시며 세월만 비겁하게 소모하고 있었을 뿐.


2층 제2 전시실은 산문 및 일상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삶의 궤적에 따라 그의 시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와 젊은 날을 함께 한 지인 조병화, 김기림, 박인환, 고 은, 박경리 등 낯익은 문인들의 이름이 특별한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만나는 사람이 결정된다고 했던가. 문득 내가 만나고 있는 얼굴들이 떠올랐다. 절박한 그 시절과 다르고,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더욱 아니지만 멈추고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 삶의 맛을 한 줄 글로 맛깔나게 풀어내는 그들이 내게는 문방사우처럼 특별한 인연임에는 틀림없다.


발걸음을 옮기니 작가의 작업 공간을 그대로 옮겨다 둔 곳이 있었다. 해묵은 책자들, 필기구, 벼루, 편지... 오래된 것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존해 둔 것이 내심 놀랍다. 매 순간 치우고, 버리고, 정리해버리는 습관이 몸에 밴 나로서는 내용물을 다 쏟아낸 빈 병처럼 느껴지는 내 삶이 한순간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망자의 유품을 품고 있으면 무섭지 않나? 오래된 빗자루를 집안에 두면 도깨비가 되어 나타난다던 내 어릴 적 어머님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속 웃음을 흘렸다.


마흔여덟의 짧은 생.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참으로 방대했다. 도서실 한편에 붉은색 표지의 <김수영 사전>을 볼 수 있었는데 고려대학교 현대시 연구회에서 발간한 책이었다. 작가의 작품 속에 사용된 시어들을 모두 발췌해서 짧은 시구와 함께 자모 순서로 풀이하여 둔 것이다. 이 많은 시어를 소유한 작가의 지적 재산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소리 내어 읽고, 앉아서 필사하고, 더러는 사진으로 찍어두고... 이렇게 열심히 음미한 시들 중에서 나를 끈적하게 놓지 않는 산문 한 편과 시가 있었다. 글 한 줄이 사람을 이처럼 숙연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온몸으로 시를 쓴 그의 투혼과,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 같은 것이 느껴졌고, 블랙리스트 논란이 분분한 현 시점에서 예술창작에 대한 사회적 보장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1에도 언론 자유요, 2에도 언론 자유요, 3에도 언론 자유다. 창작의 자유는 백 퍼센트의 언론의 자유가 없이는 도저히 되지 않는다. 창작에 있어서는 1퍼센트가 결한 자유는 언론 자유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창작자유의 조건> 중에서

문학관을 찾기 전엔 작가의 혼과 철학이 궁금했다. 그러나 돌아보는 동안, 이곳은 앞서 간 발자국 위에 나를 얹고 지금의 내 향방을 점검하는 작업이요, 시간을 멈추고 과거와 호흡하는 공간이었다.


1층 전시실로 되돌아 나오는 길에 녹음실에 들렀다. 방문 기념으로 그의 시작(詩作)인 ‘풀’을 낭송하여 파일을 만들고, 관람 마지막 순서로‘김수영 시를 읽고’라고 쓰인 게시판 앞에 섰다. 그곳에는 가로세로 10센티쯤 되는 황토색 사각 메모지가 겹겹이 그리고 빼곡하게 붙여져 있었다. 김수영 시인의 얼굴을 스케치한 그림, 밑그림을 깔고 손 글씨로 옮겨 쓴 시, 가슴이 찡한 시 한 구절 등... 진실은 긴 말이 필요 없는 것일까. ‘전 아직 어리지만 시에서 진실이 느껴져요’ 삐뚤삐뚤 쓴 어느 어린이의 메모가 감동이었다. 나도 술렁이는 내 마음을 고정시켰다.


<시작(詩作)은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 당신의 투혼을 오래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