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 상담실에서 호출 명령이 왔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호출이라니! 갑자기 가슴이 쿵쿵 방망이질을 해댔다. 호출 이유는 의외였다. 상담선생님은 성격테스트를 한 결과지를 놓고 특이해서 불렀다고 한다. 궁금증이 유발했다는 말이다.
“남들이 흔히 쉽게 하는 일을 너는 엄청 힘들게 하기도 하고, 남들이 참으로 어렵게 하는 일을 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도 해 낼 수 있는 기질이 있다.”
그때 들은 이야기 중 아리송한 말씀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남들에게 수월한 일이 내게 절대적으로 힘든 '이것'은 믿음을 갖는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요즘 따라 하게 된다.
성경 속 인물의 야곱처럼 내가 하나님과 처음 씨름을 벌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한다. 유독 술과 여자로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아버지 탓에 나는 두 분이 벌이는 부부싸움을 거의 날마다 보다시피 하고 자랐다.
어머니는 크리스천이었고, 부적처럼 안방 문 위쪽 정중앙에는 늘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버젓이 걸려 있는 십자가 아래에서 피 터지게 싸우는 부부싸움이라니!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 광경을 두고 보실 수 있을까.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이런 행태의 부부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린 나는 부끄러웠고, 분노했다.
어느 날 저녁,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나는 대형사고(?) 하나를 저질렀다.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십자가를 내린 다음 마당 한쪽으로 휑하니 치달아, 들고 있던 십자가를 쓰레기통에다 던져 넣었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들 수 없었고 결국은 새벽 두 시쯤 돼서야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쓰레기통에서 십자가를 꺼내왔다. 두려웠던 게지, 어린 마음에... 감히...!
그 후 십자가는 신문지에 돌돌 싸여 장롱과 천장 사이의 빈 공간에 꼭꼭 숨겨졌다. 어렸지만 그래도 오기라는 게 있었던지 다시 걸어두기에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를 다시 발견한 것은 우리 집에 새 식구를 들인다며 집안 도배를 하면서였다. 풀풀 날리는 먼지에 코끝이 따가움을 참으며 누렇게 바랜 신문지 뭉치를 펼쳤다. 아! 순간 나는 새까맣게 잊었고, 어머니는 십자가가 없어진 사실을 그제야 아는 듯했다.
성경을 추구하게 되면서부터 숱하게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나의 지난 모습이 오브 랩 된다. 그리고 아스라이 먼 옛날얘기 같은 어린 시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광야를 배회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너무 먼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다들 잘도 믿고 섬기고 하더니만, 유독 나에게는 왜 평생이 걸렸을까. 마치 그 상담선생님의 펙트 체크가 적중했다는 걸 확증이라도 해 보이듯이.
다행히 쓰레기통 속에 버려졌던 그 주님은 이제 내 영 안에 계신다. 지금이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보다 더 늦지 않아서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사람은 성급하여 오래 참아주지 못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참고, 인내하고, 기다려 주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