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길바닥에 흩어지던 한낮 햇살이 한 줄기로 모여 내 머리에 쏟아졌다. 낡은 빨랫감처럼 너울대던 걸음이 갑자기 힘을 얻으며 또각또각 걷는다. 그래 그거였어!
며칠은 입맛이 없었다. 분위기 메이킹으로 곧잘 너스레를 떠는 나의 언어도 힘을 잃었다. 빈 그릇을 씻어 내리는 물줄기에서 삼십여 년은 메말랐을 법한 울음조각이 쩍쩍 금을 세우며 조각조각 떨어져 나와도 나를 무겁게 누른 것의 그 어떤 실체를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자존감이 무너지는 소리. 그거였구나. 지금껏 나를 가장 나다울 수 있도록 붙잡아준 것. 그 어떤 것에서 외면당해도 나를 버티게 해 준 것. 그것이 한순간 무너져버린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일주일간의 잠복기를 거치고서야 비로소 속살을 드러낸 그 실체가 쓰리기만 하다. 스스로 좋은 엄마라고 자부하며 살았던 내 로망은 그날로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내 삶의 마지막 보루처럼 나를 지탱해 주던 것. 그것이 완전히 힘을 잃고 만 게다.
상처의 원칙. 상처는 상처를 준 편에서는 예사로 여겨 잊어버리지만, 상처를 받은 편에서는 가인의 표적처럼 깊이 패여 남는 법이다. 그런 상처를 내가 범하다니. 그것도 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에게 저지른 행위라니. 며칠은... 그 자책을 감당하지 못한 끝에 생긴 속병이었나 보다.
나도 모르는 일. 아니 전혀 기억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럴진대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피부 깊숙이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툭툭 불거지는 종기처럼 이제야 지난 상처를 뱉어내는 원망과 질책 앞에서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과거의 시간을 통과하는 빛이 머릿속을 쩡 하고 가르는 순간 어지럼증이 났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울음을 삼키며 겨우 해 준 한 마디는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어떤 것도 이미 보상이 될 수 없으므로.
어릴 적 준 모멸감을 무엇으로 보상하랴. 오랜 먼지 덮인 잠복기를 거쳐 이제야 젖은 빨래를 말리듯, 펼쳐내 보인 ‘그’ 상처 앞에서 나는 마냥 울고 싶었다. 부모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서투르고 실수가 많은 법이라는, 누군가의 한 마디로도 변명할 수 없었다. 이미 그 상처는 내부 깊숙이 똬리를 틀고 앉아, 성장하는 만큼 상처의 면적도 넓혀 갔을 일 아니겠는가. 이것에 발목 잡혀 비정상적으로 자라났을 그 한 부분을 무슨 수로 치유해 줄 수 있으랴.
그럼에도 나를 더욱 못 견디게 하는 건 또 다른 이유에 있다... 지금 참으로 내가 힘든 것은 모멸감을 준 것에 대한 자책일까, 아니면 무너져버린 내 자존감 탓일까. 솔직히 내가 받은 상처가 더 아픈 듯 하니 사람의 한계인가 싶기도 하고, 스스로 ‘부모’이기가 부끄럽기도 하다.
격세지감 같은 것일까.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사이가 된 세월 앞에 오늘 내 마음은 자꾸만 바람 소리를 내며 윙윙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