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대화
발이 느끼는 감촉에만 의존해서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걷는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따로 표시해 둔 좁게 뻗은 보도블록의 촉감. 앞을 볼 수 없다는 상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다면 멀쩡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음이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한 일인지...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장식하고, 아이라인으로 물고기 능선처럼 눈꼬리를 그려 꾸미지 않아도, 눈은 '볼 수 있다'는 기능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눈이 ‘보는 기능’을 가졌다고 해서 다 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는 일이 허다하니까.
몇 해 전 눈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황반변성과 백내장이 진행되는 중이라고 했다. 일찍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지만 나는 의외로 담담했다.
아직 남은 한쪽은 멀쩡하잖아. 그리고 눈으로 보지 않고도,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심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이 배짱(?)은 특별한 체험으로부터 왔다.
조금 오래된 일이지만 딸 덕분에 특별한 전시회를 간 적이 있다.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맹인들이 주최한 전시회였다. 생뚱맞기도 하고 궁금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이 무슨 전시회를 연다는 것인지, 아니 자신들은 정작 어떻게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들이 준비한 잔치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잠시 후 보게 될 작품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행사 진행자는 시각 장애인이었다. 열 명 남짓한 관객이 모이자 줄지어 함께 입장하게 되었는데, 안내자는 지팡이 하나씩을 나누어 주며 당부의 말을 전달했다.
“전시회장 안은 어둠상자처럼 단 한 줄기의 빛도 없습니다. 따라서 안내자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 주십시오. 앞사람과의 간격을 두고 걷되, 반드시 한 손은 벽을 훑고 다른 한 손은 지팡이에 의지하여 걸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관람 도중 가슴이 답답한 현상이 생기거나 공포감에 끝까지 가기 힘든 분은 비상구를 통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실내는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두려웠다. 딸을 부르며 서로의 위치를 가늠했다. 생전 처음 맞는 어둠 속에서의 공포. 그 경험을 이렇게 시작했다.
차들의 소음, 웅성대는 사람들의 소리, 시끌벅적한 도회지 길을 한참 걸었다. 얼마 후에는 굽어진 숲길을 지났다. 풀벌레의 울음이 들렸고 개울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를 냈다. 피부를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볼 수 없기에 온 몸의 기능이 더욱 긴장됐고 피부의 솜털 하나까지도 곧추섰다. 볼 수 있을 땐 시각만 작동했는데 눈을 감으니 오감이 모두 동원되는 듯했다.
약간의 울퉁불퉁한 산길을 지나고 있을 즈음,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공원입니다. 주위에 벤치가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허리를 굽혀 낮은 자세로 지팡이를 더듬으며 손을 내저어 보았다. 손끝으로 사각의 모서리와 단단한 질감이 느껴진다. 벤치였다. 안전하게 앉을 위치를 포착했다. 어둠 속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길고 지루하며 힘든 것인지...
어둠 속에서도 다행히 딸을 한 번도 놓치진 않았다.
'만약 예쁜 딸을 눈으로 볼 수 없는 날이 온다면...'
갑자기 딸을 손 끝으로 느껴보고 싶어졌다.
이마, 코, 입술 그리고 턱 선.... 훑어 내리는 손끝에 전율이 일었다. 오늘처럼 딸을 오감으로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바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인스턴트 엄마로 산 미안함에 고추냉이를 씹은 듯 코끝이 알싸했다.
일어나 다시 얼마를 걸으니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장이었다. 안내자는 좋아하는 채소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오돌토돌 매끈하지 못한 껍질, 손가락 셋을 합친 폭만큼의 간격으로 볼록볼록 한 구릉. 단호박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또 그 옆에 진열된 채소와 과일들을 촉각으로 후각으로 알아내는 데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잘 보려면 오래 보아야 한다....'
이곳저곳을 돌아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음료수를 파는 곳이었다. 동그랗게 둘러진 스탠드바라는 바텐더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리를 잡을 때도, 의자에 앉을 때도 모든 행동이 연신 조심스러웠다. 주문 메뉴에 따라 먼저 컵이 자리 앞에 놓였다.
음료수 값을 지불할 때는 오천 원 권이라고 해서 다시 다른 돈으로 바꾸어 냈다. 넘치지 않도록 어떻게 잔을 채울 수 있는지, 보지 않고도 어떻게 정확히 계산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시원한 맥주가 쪼르르 소리를 내며 뱃속 깊이 흘러 들어갔다. 긴장된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자리에서 일어설 즈음 바텐더는, 그럴 일이 없겠지만 혹시 바깥으로 나가면 확인하고 계산이 틀렸다면 행사 안내자에게 말해 달라고 덧붙였다. 오랜 단련으로부터 얻게 된 자신감이 묻어났다.
출구로 나오기까지는 한 시간 삼십 분이 걸렸다. 시간은 이보다 훨씬 많이 흐른 것 같았는데... 볼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지나치게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연유일까. 남의 발을 밟지 않도록 앞사람의 걸음에 맞추어 걸어야 했고, 앉을 때도, 자리를 옮길 때도 안내자의 말에 귀 기울이며 내내 조심스레 움직여야 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신중했고 질서 정연했다.
행사장을 나오기 전에 안내자의 마무리 인사가 있었다.
"우리는 여러분보다 조금 더 불편할 뿐, 여러분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껏 우리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면 이 전시회를 통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주시고, 그저 동일한 이웃의 한 사람으로 대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화답으로 방명록에 느낌 한 마디를 적었다.
보이는 대로 보는 눈의 편견에 함몰되지 않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내면의 눈을 가진 당신들을 응원한다고. 정말로 소중한 것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미술관 앞마당의 낮 햇살이 눈부시다. 눈을 감고 귀를 열었다. 분수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물줄기의 모양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미세한 소리의 차이. 펼친 손바닥에 느껴지는 세미한 감촉, 물기 머금은 바람 냄새...
제를 지내 듯 하늘 향해 높이 뿜어 오르다가, 쓰러져 눕듯 엎드러지며 너울대는 물줄기를 머릿속으로 그린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한층 감미로웠다.
다시 떠올려도 이 날의 체험은 값지고 감사하다. 듣고, 보고,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또한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참으로 소중한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 그리고 기억을 버린 뒤에도 기억이 남는 것처럼 '어둠 속의 대화'는 내 안에서 계속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