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속상했을까? 보상해 줄 수도 없는 지나간 일이건만 비 오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느닷없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한 수업에 스무 명 남짓 앉아 있는 학생들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긴장했다. 전문과목 특성상 수업하는 대상이 날마다 일정하지 않았고, 연령과 학년도 달랐다. 이런 오합지졸인 수업 분위기를 한 흐름 안에 잡아두고 가르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잠시만 틈을 보이면 강의실은 수습할 수 없이 엉망이 되었다.
그날도 열심히 강의 중인데 교실 앞문이 갑자기 휙 열렸다. 딸이다! 흠뻑 비 젖은 머리카락에서 눈 아래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빗방울. 저토록 쏟아지는 비가 어째서 내 눈엔 들어오지 않았을까? 딸아이가 우산 없이 학교에 갔다는 사실은 생각조차 못하고...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이 와서 다 데려갔어. 아무리 기다려도 나만 엄마가 오지 않고...”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엄마가 있는 일터로 달려온 열한 살 꼬맹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작은 새처럼 가냘픈 어깨를 들썩이는 딸아이를 덥석 끌어안았다. 스펀지처럼 내 품으로 차갑게 스며드는 습한 기운에 속이 아렸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열정 파 선생으로 통했지만 엄마로서는 영락없이 빵점으로 추락했던 날의 아픔. 그런 아픔 위에 나의 아이는 자랐다.
그 날처럼 작달비가 내린다. 그 시절엔 휴대폰이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언제 아무 때나 비가 와도 속 쓰릴 일이 없다. 엄마의 우산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아이는 세월을 훌쩍 건넜고, 오늘 같은 날이면 나는 그저 비가 내리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면 될 뿐이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까만 전깃줄에 물방울이 줄 서기를 하고 있다. 종종 맺힌 빗방울이 전선을 타고 흐른다. 다시 하나로 뭉치고 흐르고 뭉치고... 그리고 떨어진다. 살아온 날의 삶의 마디를 통과하며 끊임없이 흘러서 떨어지고 있는 나의 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