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두선


언제 생겼을까. 아팠다는 기억도 없는데 허벅지 한쪽에 불그죽죽한 멍이 자리를 잡았다.

색깔을 보니 그리 오래 지도 않은 듯한데...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멍이 든다더니 정말 그런 것일까.

멍든 자국을 내려다보며 나는 아침부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든다.

멍이란 외부의 충격이나 둔탁한 힘 등에 의해 발생하는 표층적인 손상이다. 하지만 피부에 파열이 없어서 시간이 가면 없어지거니 여기고 대부분 무심히 두기가 십상이다. 그 짙은 멍 자국이 사라지기만 하면 신체 내면에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혹시 손상된 혈종이 몸속을 돌아다니다 어느 한 곳에 부착해서 다른 병을 유발하는 건 아닌지...



예전에 어머님 살아계실 때 ‘가슴이 새까맣게 멍이 들었다.’는 푸념 섞인 한 마디를 자주 들었다. 피부가 뽀얀 어머니의 젖가슴에 손을 넣고 헤집어 보아도 시퍼런 멍 자국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는데 말이다.

긴 한숨과 함께 풀어내던 그 말씀은 철이 들고서야 이해하게 되었지만...


부부싸움을 한 다음 날엔 멍든 뺨에다 날계란을 문지르며, 분이 덜 풀렸는지 허공에다 욕설을 쏘아 올리던 어머니... 날계란 효과가 정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문지르는 동안 마음의 안정을 되찾는 데는 어쩌면 효과가 있었으리라.




멍이 든 상처와, 피가 난 상처와의 회복 기간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빠를까, 문득 궁금함이 인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적어도 피를 흘리게 되면 그 순간 관심과 방책을 간구하게 되니, 멍처럼 알아주지도 않고 모르고 지나치는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심리학 언어 중에 ‘원가족’이라는 용어가 있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가족을 분류할 때 개인이 태어나서 자라 온 가정을 뜻하는 말이다. 성장기에는 누구나 원가족의 영향을 받으며 그의 성품이나 후천적인 기질이 형성된다.


나의 원가족은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항상 나를 목마르게 했다.

‘자녀에게 흠뻑 사랑을 주라.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는 세상에 나갔을 때 사람한테 허겁지겁 엎어지는 법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선생님에게서 들은 이 말씀을 평생에 품으며 산 것도 자라온 내 환경 탓이라 하겠다.



술과 여자로 평생에 문제를 일으키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뒤치다꺼리를 한숨과 눈물로 퍼 올리던 어머니. 그런 부모 밑에서 도망치다시피 일찌감치 결혼해 버린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내가 제2의 원가족을 드디어 구성했을 때, 나는 그 선생님의 한 마디를 마음에 품고 안간힘을 다해 사랑하기를 애썼다. 그 결과는 심은 노력과 차이가 났지만.


누군가는 그렇게 변명했다.

“나도 처음 부모가 되어보는 거라서 실수가 많네.”라고. 그럼에도 핑계치 못할 것은 부모 이전에, 먼저는 어른다운 어른이 되는 일에 실패했다는 자괴감이다.


이순이 훨씬 넘어선 다음에야 비로소 제대로 보게 되었던 나의 실패들. 돌아보면 나의 지난날은 진행이 아니라, 늘 갈증이라는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맴도는 회전이었다.

영문도 모른 체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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