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교회

구례를 다녀와서

by 김두선


봄이 지고 있다. 이른 매화는 훨씬 예전에 졌고, 산수유, 유채꽃, 벚꽃도 다 져버렸다. 이렇게 봄을 보내는 것이 올해처럼 억울했을까. 엉덩이가 계속 들썩거렸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TV프로에서 ‘구례’를 만났다. 마을이 통째 자연인 곳.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결국 교회의 작은 그룹에서 봄나들이 계획이 세워졌고, 장소가 구례로 결정되었고, 일정 기획을 맡게 되었고, 일사천리로 절차가 진행되었다. ‘구례교회 방문’이라는 명분 하에.



내가 속한 교회는 각 지방을 단위로 교회가 세워져 있다. 교회가 ‘다른 이름’을 갖는 것은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그 지방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다. 사도 바울 시대의 초대교회와 계시록이 그 근거이다. 당연히 ‘구례 교회’의 명칭은 구례에 있기 때문이고, 나는 부산에 있으니 ‘부산교회’ 소속이다.



제사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게 이럴 때 하는 말일게다. 교회방문은 핑계이고 내 안에는 오직 봄을 허무하게 놓치지 않게 되었다는 기쁨에 가슴이 설레발쳤다. 구례 교회를 중심으로 반경을 잡은 다음, 첫날은 한국 압화 박물관, 둘째 날은 화엄사와 지리산 정원의 네 영역을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탐방키로 했다.


마중 나온 구례 교회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가 준비되어 있는 교회를 향했다. 산 능선이 짙게 드리운 어둑 저녁, 풀 냄새가 산골 향취를 더했다. 비탈진 교회입구에는 엊저녁 내린 비에 목을 떨군 야생화들이 수척해진 얼굴을 숨긴 채, 무리 지어 앉아 있다. 질퍽한 흙을 밟아본 지가 얼마만인지.


야생초 가득 핀 마당을 지나 서너 계단 올라섰다. 산을 뒷담으로 두른 채, 가로로 길게 펼쳐진 나지막한 집채가 푸근함과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안내받은 방에다 짐을 풀고 잠시 쉰 다음, 중앙 홀에 마련된 탁자를 중심으로 마주 보고 둘러앉았다.

이 깊은 산중에서, 한 믿음을 가졌으므로 하나로 통하는 낯선 얼굴들과의 친근함이라니!


부부로 구성된 가정이 전부였다. 자기소개 중에 알게 되었는데 구성요소가 재미지다. 한 부부는 포수였고, 한 부부는 나물을 캐고 재배했다. 또 한 부부는 배추를 직접 재배해서 김치를 공급하는 수제식 김치공장을, 나머지 한 부부는 정원사였다. 일이 바빠서 외부로 나가기도 힘든 상황이라, 외따로 떨어진 곳을 방문해 주니 감사하다는 말에 진한 연민이 묻어난다. 현지 식구보다 배나 되는 인수로 방문한 우리를, 넉넉히 받아주는 도량에 되레 민망하기조차 하다.


밤이면 못 새울까. 세상에서는 술잔을 기울여야 밤을 새운다고 하지만, 술이 없어도 밤을 새울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술에 취한 탓이리라.


다음날 아침, 직접 뜯은 각종 산나물로 푸짐하게 차려진 밥상에 감탄이 절로 다. 버릇이 어디 갈까. 일단 인증 숏부터 찍고 본다. 쑥부쟁이, 엉겅퀴, 부지깽이, 신선초, 부추, 미나리... 내가 이름을 알 수 있는 정도는 여기까지이다.



숨은 의도를 드러내며 둘째 날부터 기행이 시작되었다. 첫 행선지는 화엄사이다. 홍매화와 올벚나무가 아직 지지 않고 반겨주는 화엄사를 군데군데 훑으며, 법당 속에 걸려 있는 탱화며 불상을 살핀다. 문화유적지를 탐방하며 글감을 찾을까 하여 열심히 눈동자를 번득인다. 뒤이어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노고단 중턱을 올랐고, 점심은 섬진강 다슬기 수제비탕으로 술국 마시듯 한 그릇을 해치웠다.



구례교회 식구들과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우리 일행이 찾은 곳은 ‘지리산 정원’이다. 이곳은 총 네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시간이 허락되는 만큼 흩어져 구경하기로 해서 나는 ‘지리산 역사관’을 택했다. 이 고장이 역사적으로 수난의 땅임을 아프게 깨우쳐 준 공간이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곳.

그래서 미처 못다 본 곳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남는데 차는 시간을 재촉하며 우리를 국도 위에 올려놓는다. 손에 틀어쥔 검은 비닐봉지들 속에서 갖가지 산나물들이 비좁아 숨 막힌다고 아우성치며 몸을 비빈다. 먹이고, 재우고, 싸서 보내기까지 한, 구례교회 형제자매들의 넘치는 사랑이다.


달리는 차 속에서 열심히 글감을 떠올리는데 봄보다 꽃보다 교회가 남았다.(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