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이 될까 봐
두 번째 실험, 첫 번째 훈련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일까. 상대방의 기에 눌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일까. 타인과의 대화 중 못마땅한 생각이 들 때면 애먼 속을 끓일 뿐, 성장기의 나는 좀처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집에 돌아와 조근조근 생각하면 그때서야 생각나는 말을 붙잡고 억울해 하지만 그렇다고 생뚱맞게 다시 따지기도 애매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싫어서 얼마나 또 속을 끓였는지.
나를 바꾸고 싶은 의지는 고교 시절부터였다.
언어를 가르치는 분야에 종사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라, 제일 안 되는 부분에 도전한 연유로 이루어낸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이런 내가 결혼해서 첫 아이를 가졌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날 닮은 유전자를 가졌으면 어떡하지?
육아의 초점은 지극히 단순(?)했다. 뛰어나고 탁월한 사람이 아닌, 오로지 날 닮은 붕어빵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말하자면 자기 극복의 첫 실험 대상이 나 자신이었다면 두 번째 대상은 나의 첫 아이가 된 셈이다.
아이를 향한 훈련은 말을 배울 때부터 시작됐는데 사물의 이름을 익힐 때 먼저는 음절 단위로 떼어서, 다음은 음절을 합쳐서 낱말 단위로 말하게 했다.
인사를 똑 부러지게 하는 아이를 칭찬할 때 어른들
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그 녀석, 차~암 똘똘하네. 공부도 잘하게 생겼다."
그 아이를 경험한 적도, 성적표를 본 적은 더욱 없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바로 그 아이의 다부진 어투 때문이다.
*음절이 분명하면 힘 있는 언어를 갖게 된다*
말이란 그 사람의 어떠함을 대변한다. 그래서
힘 있는 말씨는 상대방의 신뢰는 물론, 깊은 마음
까지 얻어낼 수 있는 가장 쉽고도 빠른 수단이다.
수 공부ㆍ한글 공부도 아니고, 엄마들이 관심하는 영재 교육은 더욱 아닌, 오직 힘 있는 언어를 가지도록 훈련하는 것.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실험 대상인 내 아이의 첫 번째 훈련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