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들의 단톡 방에 이미지 하나가 떴다.
아! 나처럼 당한 선생님이 또 있구나 싶었다.
수업시간에 글쓰기 훈련의 일종으로 낱말의 순서대로 이어서 스토리를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를 낼 때가 있다.
무작위로 나열된 낱말들은 아무리 보아도 전혀 연결이 불가능한 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야기를 만들어 말이 되도록 이어가야 하는 학생들로선 여간 진땀 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날이면 나도 함께 짓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한 번도 없던 일이 일어났다. 이런! 선생님보다 더 빨리 써낸 제자라니. 이런 걸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해야겠지?
감탄하며 발표를 시키는 순간 빵 터지고 말았다.
<낱말 제시어>
1. 배
2. 공작새
3. 의사
4. 빗
5. 과일
6. 거울
7. 사전
8. 컵
학생은 다음과 같이 간단히 해결했다.
배가 거센 파도에 뒤집혔다. 공작새가 물에 빠졌다. 의사도 빠졌다. 빗도 빠졌다. 과일도 빠졌다. 거울도 빠졌다. 사전도 빠졌다. 컵도 빠졌다. 몽땅 다 빠졌다.
'배'를 맨 뒤에 나열해 둘 걸, 하고 속으로 후회했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 빠졌다고 해놓고서는 배가 전복되어서,라고 맨 뒤에 이유를 쓰겠지...
이후 문장 훈련에서 나는 '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그 녀석의 문장 짓기는 전설로 남게 되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냈담! 내게도 도장이 있었다면 꽝, 찍어 주었을 텐데.
'천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