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보내는 무거움을 가르고 선물처럼 기쁜 소식 하나를 접했다. 지인의 외손녀가 올해 정시에서 서울 모 대학 신문방송 학과에 합격했단다. 여섯 군데를 넣었는데 다섯 곳 줄줄이 떨어져 연일 줄초상을 치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재수해야 할까 봐."
아이는 남은 한 곳에 대한 희망을 일찌감치 접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지원 학교의 합격자 발표에서 제 이름 석자를 발견한 것이다.
얼마나 얼마나 환호성을 질렀을까.
나까지 흥분할 만큼 기분이 좋았던 것은 여섯 학교 모두를 오로지 한 길. 신문방송 학과로만 지원했다는 그 아이의 당찬 기개 때문이다. '점수 따라' 눈치껏이 아니라 '소신 따라' 소신껏 지원한다는 것. 이런 깡다구를 찾아보기는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니 말이다.
대학의 전공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앞날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만큼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벌이를 위해서 전공이 몰리고, 점수에 맞춰서 학과가 바뀌고, 부모의 욕구에 부응하여 진로가 달라진다면 그렇게 결정한 진로가 자신에게 평생의 즐거움과 보람을 얼마나 안겨줄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그 일을 하려고 부모 허리를 휘게 하며 4년을 공부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또 전공과 상관없는 일에 종사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당면한 일에 종사하는 경우도 허다하고, 명분이 대졸이다 보니 쓸데없는 자존심만 챙겨서 아무 일에나 종사 못하는 방콕 백수까지 늘어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사회 현상 중 하나이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꼭 하고 싶고, 해 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소신껏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부모들의 배려와 이 시대 젊은이들의 기개가 솔직히 아쉽다.
지금쯤 그 아이는 벌써 입학 후 해야 할 공부 준비에 다시금 돌입하지 않았을까. 그 아이의 잰걸음에 소리 없는 갈채와 격려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