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도록 긴 장마와 쏟아지던 폭우. 지난여름은 노아 시대의 홍수를 연상하게 했다.
해마다 장마철이면 그래도 비를 좋아해서 바캉스를 즐기듯 지날 수 있었는데 지난여름만큼은, 아니 앞으로 얼마일지 모르는 날들 동안은 마냥 좋아할 형편이 되지 못할 듯하다. 남편이 새로 옮긴 직장에서는 비만 오면 침수 현상이 일어나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으로 매번 골머리를 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밤 중.
헤벌쭉 입을 반이나 벌린 채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진 그의 얼굴을 한참이나 지켜본다. 기력이 모두 빠져나간 듯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다다'처럼 뵈기도 한다. 얼굴 여기저기, 가로 세로로 스크래치 된 주름은 언제 또 이렇게 많이 생겨났을까.
슬며시 매만지는 손끝에 측은함이 베어 든다. 나이 든다는 건 이런 것일까. 한때는 서슬 퍼런 날빛을 세우며 서로를 갉아먹는 시간 속의 다툼에 온 힘을 소진했는데 이것도 부부로 잘 여물어가기 위한 과정이었나 싶다. 오늘에 이르기 위한...
한 번 깨어진 그릇은 다시 붙인다 해도 머리카락 같은 금이 남는 법이다. 그 흔적 탓에 무척이나 허탄하여 혼자 가슴앓이했는데 시간이 가면서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 큰 것을 잃고 소소한 것을 얻은 셈이 되었지만, 큰 것에 있지 않다고들 하는 그 행복이 소소한 것을 통해서 내게로 와 주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말한다. 실패와 실수도 살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여서 그렇다. 다만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틔워내는 '무엇'이 있다면
이 또한 손해 보는 장사만은 아닌 셈인 게다.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내일 앞에 기죽지 않고 오늘을 살기로 다짐한다.
끝.까.지.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