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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긋기

by 김두선


인간의 도리는 왜 가르칠까. 들어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잘 아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잘 되는 일이라면 구태어 가르치지 않았겠지. 생명을 부지하려면 들숨과 날숨을 잘 쉬어야 한다고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알지만 잘 안 되는 일. 그러니까 침이 마르도록 말하고 힘써 지키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게 아닐까.

음력의 첫날인 설이 되다 보니 부모 찾아뵙는 이야기로 분분하다. 코로나로 못 가니 더욱 화젯거리가 되는 건 어쩜일까.



성경에서 십계명 가운데 사람 간에 지켜야 할 율법의 첫 번째 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라, 이다.

또한 효심에 따라서 군데군데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제 어미나 아비를 치는 자는 반드시 쳐 죽일 지니라. 부모에게 효도하면 범사가 잘 되고 땅에서도 장수하리라...


이처럼 거듭 언급하는 걸 보면 효도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대안은 무엇일까....



자식을 잘 키워내고 부모의 능력이 끝까지 유지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 부모가 되는 일은 준비도 연습도 없이 되는 까닭에 문제를 안고 입문하는 자리가 아닐까.

또 세상을 향한 눈이 크게 뜨일수록 날로 목소리를 내는 자식과는 달리, 힘과 능력이 쇠해지는 부모는 갈수록 작아지고 초라해지기 마련이다. 옛말에 여자는 어려서는 부모, 결혼하면 남편, 나이 들면 자식 시집을 산다는 건 이런 속뜻이 포함된 것 아닐까.



법륜 스님은 부모와 자식 사이가 서로 좋을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풀어냈다. 자식이 아무것도 해결 못하는 나이일 때 부모가 돌봐준 일을 자식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부모는 진자리 마른자리 키우고 돌봐 준 고생을 모두 기억하니 서운해서 잘 지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대안은 부모가 세워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주고는 잊어버릴 것.

자식 도움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미리 대책을

세울 것. 그러려면 무조건 퍼주지 말 것.


재정비(?)된 새 부모 계명이 이 시대의 젊은 부모들에게는 가능할까.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이들.

일찌감치 선긋기에 나선 그들이지만 딱히 해 줄 말이 없어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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