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풀 한 알의 기적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고
원래 내 성격은 꽤나 부지런했다. 안주安住는 나이 드는 표식 같은 것이라고 손사래 치며 언제까지나 팔팔할 것처럼 패기 당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는 일이 굴곡지기 시작하면서 학교 가기 싫을 때마다 배가 아픈 아이처럼 그만둬야 하는 합리적 핑계를 찾고 있었다. 한계점이 보이니까. 힘이 드니까.
쉬고 싶으니까.
할 일 없는 게 직업인 사람의 사는 맛이란 탄산을 모두 배출해버린 음료수처럼 밍밍했다. 어제가 오늘 같아서 무슨 요일인지 헷갈렸고, 달력을 더듬어야 며칠인지 알아챘으며 무료한 줄 모르고 무료함에 빠져 들어 개구리 중탕 같은 하루하루를 지냈다.
이런 내게 비켜갈 궁리만 하는 건 비겁하다고. 아직 쓸 시간이 남아 있다고. 너무 성급히 치른 은퇴식이라고. 스멀스멀 부추기기 시작한 ‘그 무엇’이 한 줌 볕뉘로 들어와 숨겨둔 내 부끄러움을 들추어냈다.
<이 땅에 태어나서>의 저자 아산 정주영. 책 맨 뒤편에 일곱 쪽 넘게 빼곡히 실린 그의 연보는 펄떡이는 활어처럼 생동감으로 넘실댔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끌어낸 살아 있는 교과서.
참으로 아산은 매 순간 부분이 전부인 것처럼 몰입하며 살았고 시대적인 움직임의 필요에 여실히 반응하였으며 다들 입 모아 말하듯 우리나라 근현대 발전사의 중심축으로써 앞장서 걸어간
이 시대의 거목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자서전에 기록된 문자는 페이지마다 산 활자가 되어 툭툭 튀어 오르는 힘이 있었다.
‘해 보기나 했어?’
‘내겐 나이 대신 시간만 있었다.’
아산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이 격한 두 개의 문구이면 충분했다. 아마도 이런 정신과 열정이라면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척박한 현실과의 관계 회복을 기필코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는 일은 마치 하수구에 버려지는 밥풀 한 알 같아서 아무 영양가도 없고 배고픔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이 현실화되면 이것은 가치 없고 쓸모없는 밥풀 한 알이 아니라 씨앗이 되는 기적을 품게 된다.
아산의 생각은 늘 이 ‘밥풀 한 알’처럼 시작되었다. 안 된다, 미친 짓이다, 망하고 싶어서 멋모르고 설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라며 주변의 비웃음을 받기 일쑤였으니까. 그래도 그는 매번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고 버려지는 밥풀 한 알이 될 뻔한 것을 성장과 증가와 확산을 가져오는 ‘씨앗’으로 그 뜻을 키워냈다.
어릴 적 겪었던 심각한 가난 탓이었을까. 성공은 한이 있어야 이룬다고 하더니 스물이 채 못 된 시절부터 아산의 행동과 생각은 단단한 뼈마디처럼 옹골찼다.
밥풀이 되기를 거부하고 기적을 낳는 씨앗을 품었던 아산. 그를 견고하고 힘 있게 지탱해 주었던 정신적 지주는 두 개의 화두로 정리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먼저는 어떠한 경우에도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스스로를 지켜낸 신념인데, 자연재해로 혹은 치명적인 난難 조건으로 막대한 손실을 치르는 일이 생겨도 그는 신용을 가장 큰 담보로 삼고 끝까지 소명을 다했다.
다음으로는 ‘국가적 기업성’을 지녀야 한다는 아산의 기업철학이다. 나라가 없으면 국민이 없고 기업이 없으면 직장이 없다, 라는 아산의 말속에는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의 그와, 동시에 국민의 삶의 질과 국가의 경제발전을 추구하고자 하는 변혁에의 욕구와 애착심으로 충일했다.
특히 기업의 이익을 국가의 이익보다 앞세워서는 안 되며, 특히 세계시장으로 진출한 기업은 그때부터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은 정작 수탁해서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라는 그의 진언은 공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기업인으로서의 차별화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아산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녹여내는 그의 해학과 기지였다. 참으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은 일보다는 사람에 있다고들 한다. 아산은 ‘생각하는 불도저’라는 말에 걸맞게 사람을 얻는 일에 있어서도 동일한 애착과 승부욕을 보여주었다. 일화로 현대에서 육성시킨 사람을 경쟁사에 빼앗길 때도 특유의 호방한 기상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는 자서전에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피력했다.
<그 인력들이 외국 회사로 가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이니 크게 아까워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선발 업체의 할 일이고 그것도 그 분야의 발전에 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관련 산업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관련 하청업자들의 기술 향상이야말로 국가의 귀중한 재산이기 때문이다.> p.204 본문 중에서
‘군자는 태연하면서 교만하지 않고... 군자는 긍정적 방향으로 노력하고... 군자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군자는 문제점을 항상 자신에게서 찾고... 군자는 일생을 마칠 때 이름이 세상에 남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다....’ 논어의 문구들에 비추어 보면 어릴 적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운 것도 아산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그를 인본주의라 일컫는 것은 이러한 덕성에 바탕한 것이 아닌지.
씨앗의 세계 안에는 잎도 있고 줄기도 있고 가지와 열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발아되려면 단단한 껍질이 터지는 충격과 고통을 감수해야만 하듯, 아산은 일의 결국을 보기 위해서 ‘요 정도’, ‘이만큼’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람이 뜻을 세운 일에는 ‘적당히’가 통하지 않으며 거저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일러준 본이리라. 적당히 게을러서 편하고 싶고, 재미 따라 놀면서 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일이란 없다는 것을.
책을 덮으니 평생 품었다가 버려진 나의 꿈 하나가 과녁의 정중앙을 관통한 화살처럼 아프게 와 꽂힌다. 젊어서는 시간이 없어서. 나이 들어서는 정보가 부족해서 안 되겠다고 포기한 꿈.
더하려야 더 할 게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해 보았나.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눌려서 못해 본 건 아닌가. 일단 시작하면 성공이든 실패든 끝을 보겠다는 오기가 있기는 한가, 곱씹어 본다.
버려진 꿈을 다시 끌어안으며 어떻게 밥풀이 밥풀 아닌 씨앗이 될 수 있는지 그에게서 답을 얻는다. 달리는 말은 마구간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격언 한 줄을 아산의 일생을 통해 반추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