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도둑들>이라는 TV프로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날은 '빈센트 반 고흐’ 편이었다. '죽어야 사는 남자' 한 마디로 요약한 그의 그림과 생애가 궁금해서 굼뜬 시곗바늘을 몇 번이나 탓하며 기다린 끝에 보게 됐다.
네덜란드 화가. 서른일곱에 권총 자살로 끝낸 짧은 생애. 그리고 정신 질환과 고독. 외로움과 뼈저린 가난 속에 허덕이며 살다 간 불행한 화가인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팔린 작품이 단 한 점이라는 사실은 충격으로 와닿았다.
스물여섯에 시작하여 십여 년 동안 그려낸 작품이 세상에 알려진 것만도 팔백스무여 점이 넘는다. 그런데 그의 천재성과 열정에 비하면 너무 가혹한 대가 아닌가. 혹여 생전에 그 천재성을 인정받고 배부른 화가로 살았더면 명품 그림이 나오지 않기라도 했을까.
궁금했다. 그 끈질기고 집요한 예술 혼은 무엇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인지. 가난과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누구도 사 주지 않는 그림을 그리며 어떻게 사는 끝 날까지 한 길을 갈 수 있었는지.
또... 무명의 작가들은누구 하나 사줄 가능성이 없어 뵈는 책이건만왜 쓰기를 멈추지 않으며 그렇게 집요하게 출간을 꿈꾸는 것인지. 어떻게 먹고 사느냐보다는 무엇을 하며 사느냐에 가치를 두기 때문일까.
난 작가도 뭣도 아니야.
뜬금없이 자기 성찰로 생각의 물고가 바뀌었다. 두어 번의 도전 끝에 손을 놔버린 것에 대한 수치심도 일었다. 3년 전 그리고 연이어 한 해 더. 지역 문화진흥회에 출판을 위한 지원금 신청에 응모했다. 하지만 두 번 다 대상에서 제외됐고, 각종 문학 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탓에 활동 이력이 없기 때문이라는 충고가 돌아왔다. 난 그저 글이 좋아 글을 쓰고 싶었을 따름인데...
신인 작가 상을 받고 등단하기 전, 전국 공모전에서 이미 몇 번의 수상 경력을 쌓았고 문우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정을 받는 편이었다. 그리고 평생 해 오던 일이 남의 글 대필해 주는 것 아니었던가. 충격받은 유리창에 뻗쳐나간 금처럼 자존심에 금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튼 그 일 이후로 글 쓰는 열정은 소금에 절인 배춧잎처럼 시들해졌다. 굳이 원하면 내 돈으로 출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사서 읽어줄 정도의 책이 아니라면 출판은 해서 뭐하냐는 핑곗거리를 이유 삼아.
고흐의 그림을 사준 유일한 사람. 그녀는 고흐에게 희망을 안겨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으리라. 그때 판매된 그림이 <아를의 붉은 포도밭>이다. 그림을 산 ‘안나 보흐'는 유명한 도자기 회사 창업자의 후손으로 벨기에 화가 모임에서 활동했다고 전한다. 자료를 더 찾아보니 그녀의 동생과 고흐는 이미 아는 사이로서 고흐가 그의 초상화를 그려줄 정도로 친했다는 기록도 있다.
동생 테오의 후원이 있었지만 무척이나 지난하게 살았던 고흐. 그의 작품 중에 유독 자화상이 많은 연유는 모델을 살 돈이 없었던 탓도 있지 않을까, 가늠해 본다. 나날이 초췌하게 망가져가는 모습을 확인이라도 하듯, 자신을 붓 끝으로 화폭에 새겨간 고흐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의 최후를 앞당긴 것은 고갱의 절교도 한몫했을 테다. 두 사람은 절친이었지만 그림에 대한 예술적 영감이 서로 달라서 늘 불편했다. 그러던 중, 날로 괴팍해지는 고흐의 성질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고갱이 어느 날 결별을 선언하고 떠나자 고흐는 스스로 자신의 한쪽 귀를 잘라버렸다. 고갱의 가시 돋친 말을 듣게 된 충격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화폭의 색채만큼이나 강렬한 열정, 광기, 가난, 반복되는 정신질환, 외로움. 그의 짧은 삶을 대변해 줄 단어들을 나열해 보니 그림에 대한 열정을 뺀 나머지는 모두가 어둡고 침울한 것들의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렸다!
거울을 보며 그렸기 때문에 그의 자화상은 좌우가 바뀌어 있다는 뒷이야기가 한 예술가의 고혼 속으로 유채 이탈되었던 나를 다시 제자리로 옮겨 놓는다. 속설로 집안에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두면 재물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 이는 고흐 사후에 그의 작품이 엄청난 고가로 팔리면서 생겨난 얘기가 아닐는지...? 고흐의 해바라기는 아니지만 우리 집 주방 벽에도 해바라기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김종학 화백의 <해바라기와 나비>를 딸이 모작으로 연습 삼아 그린 아크릴화이다.
김종학 화백의 해바라기와 나비 ㆍ모작模作
앞으로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멀리 있는 딸 생각에 얹어서 시공간을 거슬러 고흐가 연상되는 건 아닌지... 한 시간 남짓, 화가와 화가의 그림을 논하는 이색적인 예능 프로이었지만 줄글로는 잘 기억되지 않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박힌 덕분이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여니 구독자 한 분이 더 생겼다. 게으르기 그지없는 내 글 공간에 방문이라니...
소갈딱지 없는 마음이 슬그머니 눙쳐지는 틈새로 닫혔던 기억이 통로를 연다. 딸이 내게한 말이 재생된다. 첫 수필을 썼을 때의 격려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면 단 한 명의 독자인 딸을 위해서라도 계속 글을 써 달라던.
생각하면 '브런치'는 내 꿈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주는 얼마나 귀중한 공간인지. 두 팔로 어긋 나게 몸을 싸안으며 내 안의 나를 토닥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