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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狂氣거나 말거나

by 김두선

요절복통. 이 말을 요럴 때 써야 하나. 지금은 한 보따리 돈을 쥐어준다 해도 절대로 못할 일이지만 지난날에는 그야말로 객기 충천이었다. 아니 객기라기보다 외부를 향한 이유 있는 반항 내지는 저항의 표출이지 않았을까...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주말이나 방학을 이용하여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 그 당시 중ㆍ고등학교는 등급이 매겨져 있었는데 내가 다니는 학원에는 소위 그 일류라는 학교 학생들이 판을 쳤고 나는 이류에 속했다.


학원은 언제나 수강생으로 넘쳐났다. 당연히 금싸라기 같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어느 날이었다. 앉으려는 자리마다 책상 위에 문구류 한 개씩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모두 잡아둔 자리니 앉지 말란다. 학생 한 명이 같은 학교 아이들 자리를 아예 한꺼번에 맡아둔 것이다.

한두 자리면 애교로나 봐줄 수 있지. 어느 드라마 속 유행어처럼 '이건 아니라고 봐~' 아닌가.

강의실에 같이 수학受學하면서 너무 매너 없는 짓 아니냐고 따졌지만 그 여학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일찌감치 대기줄 맨 앞에 서서 앞 시간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알같이 교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모로 서서 겨우 들어설 수 있는 좁은 통로를 마다하고 책상과 책상을 날아다니듯 건너뛰며 신발 자국 하나씩을 선명하게 찍었다.

"발자국 찍힌 다 맡은 자리~~."



그날 강의실 정중앙 일곱 줄은 영문도 모르는 우리 학교 학생 서너 명이 띄엄띄엄 차지한 채, 나머지는 몽땅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 콩나물시루 같은 강의실에서 금싸라기 같은 중앙 부분이 텅텅 비었으니 앞에 서서 바라보면 그 모양새가 퍽이나 황당하지 않았을까.

혹여 정도면 객기가 아니고 광기인가? 하지만 광기거나 말거나 복수전은 대성공이었다. 까닭을 알게 된 선생님의 엄명까지 얹어서 그날 이후 싹수없는 관행은 깔끔히 정리되고 말았으니까.



일류 중학교에 다녔으면서 일류 고등학교로의 진학에 실패 탓으로 더욱 심했던 콤플렉스...

그 무너지는 자존감을 지키려다 보니 모든 일에 저항적인 자세로 스스로를 밀어붙였 날들... 그런데 이런 행위의 반복은 내성적인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들 수 있는 뜻밖의 행운을 만들어냈다. 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됐고, 악수를 먼저 청하는 사람이 됐다. 아마도 일류 스펙만 쌓았다면 평생 오만하거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지나 않았을는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여도 좋다. 살면서 이 두 가지는 진실로 믿게 되었으니까.


스펙이 일류라고 사람까지 일류란 법은 없다는 것을. 에는 다 나쁜 일도 없고 다 좋은 일도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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