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morous’와 ‘야영’이라는 뜻의 ‘camping’의 합성어. '고급진 야영'이라는 뜻을 가졌으니 듣기만 해도 설렘과 유쾌함이 체감되는 말이다.
딸 덕에, 단어도 낯선 '글램핑'이라는 것을 하러 떠났었다. 가평 파인 포레스트. 그곳까지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도중에 두른 '가평 아트 살롱.' 꽤나 거대한 규모의 멋들어진 외곽을 뽐내고 섰다. 투명한 유리 지붕 위로 흘러내려 떨어지는 물소리는 맑은 날임에도 비 오는 날의 운치를 자아내어 인상적이었다.
뽀얀 하트가 그려진 달달한 녹차 카페라테 한 잔. 맛집과 예쁜 카페를 찜해 두는 딸의 정보력은 참말로 짱이라며 늘 감탄하게 된다.
숙소가 가까워질 즈음, 길게 이어진 외줄기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 운전대를 잡은 딸이 잔뜩 긴장한다. 후진은 아직도 자신이 없다는 엄살(?) 탓이다. 정말 가도 가도 협소한 굽이는 끝도 없이 나타났다. 그 압박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요량으로 쓰잘 데 없는 우스갯소리로 곁에서 설레발치기도 했다. 한가한 평일 오후여서 그런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염려한 일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지만.
파인 포레스트. 일반 숙박시설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한 동씩 초강력 텐트(?)로 지어진 외관이 특이해 보였고, 경관이 뛰어난 계곡을 중심으로 예닐곱 동쯤 띄엄띄엄 지어져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바비큐와 깜짝 이벤트로 장작불도 예약해 두었단다. 세상에나! 소식가小食家 둘이서 구워 먹을 한돈 삼겹 달랑 석 줄에 바비큐 씩이라니. 누가 보면 웃겠다, 하며 한바탕 파안대소.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고기 지글거리는 소리, 딸 웃음소리가 엉켜 고요히 가라앉은 계곡의 밤공기를 요란하게 뒤섞어 놓는다. 타닥타닥 장작 타오르는 소리도 정겹다. 20대에 거제도 구조라 해변에서 캠프한 이후, 40여 년 만에 맡아보는 타는 장작 냄새에 야영의 즐거움에 빠져 들었다. 불이 춤춘다. 마주 앉은 딸의 얼굴이 불꽃 사이로 실루엣처럼 흔들린다. 산속의 밤은 깊어만 가고...
졸지에 마음은 부자가 된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이런 시가 절로 읊어진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싶은 것이 딸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자식이 잘해도 정작 편하지만은 않은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아직은 이르다고 손사래 치면, 준비돼서 잘하려면 아무것도 못한다며 내 뜻을 일축한다.
대기업 과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버티기 5년. 빈손으로 시작한 사업이란 게 녹록지 않다는 건 각오한 일이었지만 제 부담에 치어 혹시 좌절이라도 할까 봐 늘 조바심이 인다. 그런데 바쁜 와중에도 사흘 날을 뭉텅 잘라 내게 틈을 내준 것이다. 직장에 첫발을 딛고부터 지금까지 딸은 한 해 꼭 두어 번은 나와 함께 국내 투어를 한다. 내가 운전을 못하니 기꺼이 기사가 되어주는 셈이다. 내 취향에 맞춰 대부분 유적지나 문인의 자취를 따라 기행 하게 되지만 한 번도 고루하다거나 재미없다고 투덜댄 적이 없다.
이번 기행의 다음 코스는 서대문 형무소이다. 내친김에 지금껏 딸과 함께 기행한 곳을 한 편씩 정리해서 글로 남기는 것도 좋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