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제자리를 찾지 못한 마음이 숱한 자문自問으로 어지럽기만 하다. 어제들은 비보 탓이다.
한 지인의 아들이 그제 저녁 스스로 생을 놓았다. 서른셋... 서른셋... 서른셋... 그 대단한 허무에 눌려 진짜 이별을 인정하기가 두렵다.
그에 대해 처음 이야기 들은 것은 고교 삼 학년이 된 지 한 달쯤 되는 시점이었다. 갑자기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과의 면담을 내게 부탁해 왔지만 도움이 되어줄 수도 없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으면서 앞뒤 정황도 모른 체 불쑥 찾아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마음을 만져야 할지 막연했다.
또 이미 방문을 걸어 잠갔다면 고작 몇 마디 말로 생각을 돌리기도 어려우리라 여겼으니까.
수년 후에 다시 만났을 때, 아들은 검정고시를 치러 국립대학교 입학에서 졸업까지 무난히 마쳤고 지금껏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래도 정규대학을 마쳤다니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첫 번째 요건은 갖춘 셈 아닌가. 내려져 있던 스위치가 한순간 올려지는 듯했다.
그럼에도 결국 이런 비극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건 무엇일까. 그의 부모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고장 나버린 형광등처럼 늘 번거롭고 위험한 존재였어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슬픔에 오열하고 있을까. 아니 아니, 이럴 줄 알았더면 더 잘해줄 걸, 하면서도 세상의 한계에 부딪힌 그가 한계 없는 세상으로 옮겨간 것에 차라리 동의할까.
지향점이 지나친 탐심이라면 욕심 없이 사는 한계는 어디쯤에 선긋기를 해야 하는 것일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자식의 부족함을 지켜보는 마음은 그저 살아만 있어주어도 고맙다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여유를 언제까지 부릴 수 있을까.
모든 의문은 남은 사람들의 몫으로 두고 영면에 들어선 그의 영혼은 이미 안식하고 있을 테지.
한창의 나이.
피워보지 못한 젊음.
부모보다 앞서 선택한 죽음.
늘 있을 줄 알던 것이 다시는 없는 것이 되는
이 찰나적인 사건에 대한 모연한 느낌.
나는 궤도를 이탈한 소행성처럼 온종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또한 무엇이든 하려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