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깜지

by 김두선

우연히 '깜지'라는 낱말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듣는 말이다. 정보 검색을 하니 학생들 사이에 사용하는 은어로서 공부한 내용을 빼곡히 적어 제출하는 과제를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학교 시절, 더러는 이런 숙제를 받기도 했다는데 나는 이런 험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떠올리는 순간, 평생 되곺아보지 않았던 장면 하나가 올랐다.


내가 사용한 연습장은 바닥에 줄이 그어지지 않은 누릇한 시험지로 대학노트 크기만 한 것이었는데 왼쪽 세로 편으로 스프링이 붙어 있었다. 나는 공책을 사면 언제나 한 면의 가로으로 접어서 세로선이 선명하도록 손톱 끝으로 꾹꾹 눌렀다. 그러고는 맨 위에서부터 반쪽, 또 나머지 반쪽에 쓰고 외우기를 반복하면서 흑 연필심으로 지면을 꽉꽉 채워나갔다. 새까맣다 못해 번들거리는 공책을 보는 희열이라니!


연습장 한 권을 다 쓰고 맨 앞장에서부터 한 장 한 장 다시 뒤적이면 손끝 지문만큼 새까맣게 묻어나던 연필심 흔적. '깜지'라는 낱말 덕분에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열정을 어쩌다 생생히 음미해 보게 됐다.



그토록 열심이었던 그 에너지는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사는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며 산다고 여겼는데 어느 시점 되돌아보니 걷고자 애쓴 길은 오른쪽이었는데, 왼쪽으로 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제 풀에 꺾여 내 안의 힘이 빠져나간 것은. 아니 어쩌면 거친 자아가 파쇄되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살면서 맞게 되는 삶의 마디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의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타인에게 요구를 내려놓을 줄 아는 관용이 생기게 되고, 부족한 것을 보면 오히려 긍휼히 여길 줄도 알게 된다. 그래서 나쁜 게 다 나쁜 건 아니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손목이 빠지도록 깜지를 쌓는 힘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이런 마음을 갖기나 했을까. 함께 살아가는 이유 때문에 평생 나를 받아야 하는 가족들도 이제야 제대로 보인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요구가 없는 것.



흑백 논리로 사람을 가르던 눈이 조금씩 조금씩 감겨지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비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