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자는 80세에도 사랑을 한다>
두어 해 전, 딸이 사서 보내준 책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자임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 제목처럼 프랑스 여자들의 노후는 혼자 먹어도 품위 있게 상을 차리고, 예쁜 카페에서 차를 즐기고, 우아한 의상을 차려 입고, 고고하게 늙어가는 여유가 있다. 낡아지지 않는 품격을 지녔다고나 할까.
딸에게 늘 전해 듣던 바 대로다. 그들에게 여포(*여자 포기)란 생각조차 할 수 없어 보인다. 손자 사랑에 연연하면서 세상 끝날까지 가족을 나보다 우선시하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일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럽 사람들의 일상 속 문화를 따끈따끈한 온도로 듣게 된 것은 파리에 스타트업 사무실을 두고 있는 딸 덕분이다. 내겐 새로운 생각과 안목을 열어주는 서양 문화의 첨단 통로인 셈이다. 최근에는 딸이랑 수원 화성과 부여를 기행 했는데 함께 본 '어떤' 장면에서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설게 보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화성행궁 공영주차장 입구에는 주말을 즐기려는 차량들이 발이 묶인 채 어디까지 줄을 이어 무더위와 지루한 시간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얼마 후,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바로 앞차에서 운전석 옆자리와 뒷자리의 문이 덜컹 열린다. 몇 대 건너 앞에도, 또 그 앞에도 덩달아 차 문이 열린다. 재미난 것은 차에서 먼저 내리는 팀은 어김없이 엄마와 아이라는 점이다. 지루한 수고는 아빠 혼자만의 몫으로 돌리고 다 같이 고생하지 말자는 합의점을 찾은 것일 테다.
이 장면을 보는 딸의 재해석된 이야기가 신선하다.
왈, 가족이란 어떤 일에서든지 같이 해야 할 공동 운명체이므로 프랑스에서는 이런 경우에도 어른에서 아이까지 이 지루한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게 당연하단다. 우리는 같이 고생하지 말고 아이라도 편하게 해 주자는 게 한국식 정서의 표준인데 말이지. 같은 상황 전혀 다른 대처 방법이다.
흔히 말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이 시대의 아이들.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는 회피 내지 의지박약은 문화가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소소한 행위가 축적된 결과물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다. 정말 부모들의 과잉보호와 지나친 애착이 빚어낸 잘못된 밑그림 탓이라면 그저 대책 없이 넘치는 사랑 말고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적 차원에서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수고할 테니 너는 빠지라는 식의 배려는 배려가 아니라 불공평을 배우게 하는 잘못된 학습이라는 것을.
힘을 모아야 하는 힘든 일에서 눈치껏 발뺌하는 기회주의자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자식은 평생 AS 감이라는 한국식 부모의 탄식처럼 자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