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몽돌해변. 이곳에는 세 번 갈 기회가 있었다. 이십 대에 한 번. 결혼해서 가족과 함께 한 번. 그리고 수필 문우와 한 번이다. 앞서 두 번은 놀이에 들떠 그저 보이는 것에만 집중한 눈과 귀가 제 구실을 못하고 닫혀 있었다.
소리 내어 울고 있는 물소리가 눈과 귀를 열어준 것은 세 번째 갔을 때였다.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알 수 있다는 말은 마음이 겸손해져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인가 보다. 그때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의 반쪽을 잃고 상실감에 가슴앓이할 때였다. 마음속에 혼자 꼭꼭 묻어두고 아프다고 소리조차 내지 못하던 날들. 그날 몽돌 해변의 파도는 나를 대신하여 울어준 통곡이었다.
밀려왔다 부서지고, 흔들리며, 조심조심 빠져나가는 물들의 흐름. 내 마음도 따라서 검정 몽돌에 부딪히고 물 그림자에 흔들리고 먼바다를 향해 스러지듯 멀어져 가고 또다시 내 안으로 멍울져 와 안겼다. 밀물과 썰물의 움직임과 그 소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다. 밀려올 때는 한꺼번에 쏴아 하고 달려오지만 밀려갈 때는 몽돌을 쓸어안고 달그락달그락 아프게 부딪히며 구르며 느리게 아주 느리게 빠져나간다는 것을. 살면서 다가오는 우리네 고통처럼...
아린 심장을 쓸어내려주던 물소리. 그때부터 나는 물이 소리 내며 흐르는 곳이면 언제나 습관처럼 물의 소리를 영상으로 담아 오곤 했다. 지금 처한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 태곳적 시점 어딘가로 나를 이끌어 가는 소리... 물소리를 채집하는 것은 참으로 괜찮은 힐링 중의 하나이다. 오늘 같은 무더위에 물을 보며 멍 때리는 것은. 아니, 물소리에 취해 멍 때리는 것은.
물멍에는 약간의 단계가 있었다.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처음엔 온몸에 전율을 느끼는 약간의 어지럼증이 이는 듯했고 그것 뒤에는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몸의 중량감이, 그리고 마침내 물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면 나는 이 망망한 우주 공간을 먼지처럼 떠다닐 수 있었다. 슬픔도 상처도 없고, 눈물도 앙금도 없는 순백의 공간. 종교에서 말하는 입신이란 혹여 이런 체험 비슷한 것일까....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반복 작동되는 물소리에 빠져들며 몽돌해변으로 달려간다. 지금은 그립다 말할 수 있는 그곳, 그날의 물소리. 나는 다시 영주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위에서 물멍하던 버튼에 손끝을 멈춘다. 그리고 또 있지. 담양 소쇄원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명옥헌 원림에 흐르는 물소리, 또, 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