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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밤

새수영지 기고

by 김두선


좁은 골목을 접하고 있는 우리 집 안방 창 너머에는 목이 긴 가로등 하나가 한갓진 길을 훤하게 밝히고 섰다. 어둑 길을 밝혀주는 고마운 보행등이지만 내겐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대역죄인이다.




우리 집은 필로티 식 구조 일층으로 좁은 도로하고. 문제의 보행등은 이 도로를 사이로 엇비슷하게 줄을 맞추어 안방 창 너머 있는데 밤이면 안방 깊숙이까지 불빛이 들어와 날마다 침상을 간섭한다. 해서 불투명 겹창은 물론, 일 년 내내 암막커튼까지 얄짤없이 드리워야 잠을 청할 수 있. 엄동설한도 아니고 요즘 같은 무더위에 그 갑갑함이랴. 하지만 꽁꽁 문을 닫은 여름밤을 지새우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은 혼잣말로 열을 올리는 일이었다.


'에이, 저 놈의 가로등!

돌멩이라도 던져 부숴 버리고 싶다.'




최근의 일이다. 구청에서 발간하는 7월호 '새수영'지를 읽다가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도시 조명등 정비기간.'

기사 헤드 라인을 보는 순간, 콩닥대는 심장을 누르 검지 끝으로 전번 숫자 일곱을 또박또박 짚었다. 과연 숙원사업을 풀 수 있으려나, 조바심 내면서. 전화를 연결한 담당자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컴퓨터로 지번을 확인하고. 우리 집과 가로등이 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면 방해 명분으로 접수 완료.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라고 했다.



바로 다음 날인 토요일 밤이다. 자려고 불을 끄고 창을 닫으려는데 방안이 캄캄했다. 으응? 바깥을 내다봤더니 보행등에 디귿 자 모양의 갓이 덧씌워져다. 초 스피드! 대한민국 공무원의 행정처리 속도라니. 순간 허망도 했다. 왜 일찍이 민원을 넣어볼 생각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이사 온 그날로부터 6년의 밤을 속앓이 하면서. 저 죄 없는 보행등을 미워만 하면서.



신세대가 아니라 쉰 세대로 살았던 우리 시절엔

대大 앞에서 소小는 마땅히 희생돼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니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서 나 개인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줄 여겼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의 아둔함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거역보다는 순응하는 데 왜 이처럼 길들 있는지. 시대는 변해서 개인의 위상 날로 중시되고 사람들도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나는 왜 구태적인 사고에 매몰되어 정지해 있는지. 누구와도 얽히지 않은 단독적인 일에는 개방적이 개혁적이면서도, 남과 함께 하는 일에는 참는 것만이 최선인 줄 알며 비겁하게 물러서는지.



말은 해야 맛이다. 일단 부딪쳐보고 이판사판 정리할 일이다. 가끔왜? 하고 태클도 걸어 볼 일이다.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한 체질을 지금부터라도 개선하도록 훈련해야지. 아, 창을 열어두면 훅 뛰어들어오는 바람에 여름밤을 즐기며 자는 게 얼마 만인지. 도시의 불빛에 삼켜진 별들이 어쩌다 도망쳐 나온 놈이 있을까 목을 빼고 올려다보기도 하면서. 며칠 전까지도 둥글었던 달이 조금씩 이지러지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설핏 웃음이 배어난다. 6년의 밤이나 앓아온 속병을 단 하룻밤 새 해결한 충격이 컸나 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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