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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국 Feb 13. 2019

서머힐의 학교총회

5. 모두가 동등한 권리

서머힐에서는 모두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아무도 그랜드 피아노 위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 나도 주인의 허락 없이는 그들의 자전거를 탈수가 없다. 학교총회에서는 여섯 살짜리의 한 표가 나의 한 표와 같다.... 여섯 살짜리가 손을 들기 전에 그래도 우리와 같은 표를 던져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왜냐하면 내가 제안했던 것들이 너무나 많이 부결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머힐을 읽었던 1984년에는 학생들에게는 그들의 권리라고 할 만한 것조차 주어지지 않은 듯했다. 홈룸이라 부르고 H.R.이라고 썼던 학급회의의 주제는 학생부 혹은 생활지도부에서 정해져서 학급에 제시되었다. 예를 들면, ‘면학분위기 조성’, ‘인사 잘하기’와 같은 것들이었다. 회의는 반장이라 부르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용어를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이 의장으로서 회의를 진행하나 아이들의 문제를 회의 안건으로 다루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권리는 반장과 부반장을 선출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듯했다. 이때는 학급의 반장이나 부반장에 추천되기 위해서는 ‘성적’이 80점 이상을 받아야만 했다. 학생회라는 자치 조직은 학급의 반장과 부반장으로 구성된 대의원 회의에서 간접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었고, 자치 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성금을 거두어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수준이었다. 학생대의원회의에서 건의된 내용은 학교장에게 서류로 전달되었지만, 건의된 내용을 학생들은 알지 못했고, 처리된 결과도 알지 못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상급학년이 되었을 때, 몇몇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서 “학급회의에서의 자신들의 의견이 담임선생님에 의해서 부당하게 처리된다.”고 호소한 경우가 있었다. 자신들이 어떤 의견을 내면 담임선생님은 “내용을 충분히 생각하고 의견을 내야지 갑자기 생각이 난다고 해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그 반의 담임선생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이었고, 학교와 사회의 변화를 갈망하는 선생님이었다. 그 반은 그래도 아이들의 의견과 권리를 존중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답답한 마음으로 그 아이들에게 학급회의에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한 사람이 의견을 제출하면, 다른 사람이 뒤를 이어서 ‘동의’하는 발언을 하고, 다른 사람이 다시 뒤를 이어서 ‘재청’의 의견을 낸다면 학급회의에서 의견이 반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실제 학급회의에서 그런 방법을 적용하여 자신들의 생각이 반영되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부 교실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의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고 선도 규정을 바탕으로 통제의 대상으로 길들이고 있었다. 등굣길에는 교문 앞에 학생들로 구성된 ‘선도부’가 지켜 서서 학생들이 규정대로 복장을 갖추고 있는지를 눈을 부라리고 감시하고 있었으며, 수업 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에는 ‘선도부’가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금지된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시하였다. 

 서울형혁신학교가 시작된 2011년 이후 여러 학교에서 ‘선도부’가 사라졌고, 등굣길은 ‘등교맞이’라고 하는 형식의 사업들이 등장하였고, 몇몇 초등혁신학교에서는 ‘학년다모임’이라는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내가 근무했던 태릉중학교에서 ‘한 여름 밤의 콘서트’라는 여름 방학 직전의 학생회 기획 행사를 학교장은 자신의 권한으로 시간과 규모를 축소시켜 진행하게 하였으며, 학급회의 직전에 전체 학생들에게 학급회의 안건을 설명하고 학생회 활동을 보고하는 ‘학생회 뉴스’가 학교장에 의해서 제작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또한 생활규정 개정을 위한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설문이나 공청회 등에서 학생들의 의사 반영률을 얼마로 할 것인지를 정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수는 많으나 교사들의 수는 적다는 이유였다.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특별시교육청은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라는 사업을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토론이 의미가 있으려면 교직원들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데, 교직원들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교장에 의해서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대다수 학교에서는 그 사업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토론’을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토론이 있는 교직원회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학교는 대부분 주어진 주제에 대하여 교과서적인 답을 늘어놓고 있는 1984년 버전의 학급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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