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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르다 May 05. 2023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꽃바구니 만들기'

플로리스트의 겉과 속

플로리스트 사이에선 5월 매출이 3-4개월 월세를 내고도 남을 만큼의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말이 있다.

남편 제자였던 청년 두 명은 지난 3월 결혼식을 올리고 아직 신혼여행을 가지 못했는데, 신부가 꽃집은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5월 시즌을 놓칠 수 없어서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일 매출 100만 원은 기본이거니와 잘 나가는 매장은 200-300만 원도 거뜬히 버는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몰려 있는 5월.

꽃 판매 사업자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 작업실 정도만 가지고 있는 나는 지인들에게 주문을 받아 꽃바구니를 제작했다.


꽃바구니를 두 개 주문받아도 꽃과 소재는 최소 5-6 종류를 사야 한다.

거기다 평소에 한 단에 5-6천 원 하던 거베라가 저번주부터 만 원이 되는 등 평소 꽃 값의 두 배가 오른 시점에 사실 손해 보는 장사를 시작한 셈이었다.


누구에게든 나눠주는 걸 즐기는 나로서는 남은 꽃은 교회 사모님 가져다 드리고 근처 사는 친구 주면 되지! 로 시작했는데 웬 걸, 양재 꽃시장에서 배달 온 장미는 한 단 자체가 아예 망가진 꽃이라 물올림을 해도 다음날엔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카네이션은 콜롬비아산이 제일 비싸고 중국산은 30% 정도 저렴한데 이마저도 다른 때보단 높은 가격으로 팔고 있기 때문에 12만 원짜리 주문에 15만 원치 꽃과 꽃 바구니, 포장지, 리본 값, 스틱, 서비스로 준 미니 화병까지 더하면 배보다 배가 훠어어얼씬 더 큰 결과를 맞이했다.



남편이 오늘은 결국 한마디를 했다.

아니... 봉사하는 거야? 라고.


나는 그래도 이 일이 좋다.

아직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꼬꼬마 플로리스트를 믿고 서울에서부터 주문을 넣어준 친구가 고맙고

가족 분들이 꽃바구니를 받아들고 아름답다며 칭찬해 준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받아 보니 약 20만 원을 투자해서 12만 원을 번, 바보 같은 영업손실을 낸 경험이 되려 자랑거리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우리 꽃 쌤이 2-3천만 원은 투자해야 적어도 남에게 팔 꽃을 제대로 만들 수 있고, 누굴 가르칠 수 있게 된다고 늘 말씀하시는데 그 말은 꽃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맞는 말임을 실감한다.


지금도 베란다에 못다 판 꽃들이 물통 가득 담겨 있지만 볼 때마다 기분을 좋게 하니 이 또한 값으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비 오는 날 배송기사님 기다려서 서울까지 꽃바구니 두 개를 실어 보내고,

부족한 꽃 아는 선생님 가게 가서 저렴하게 데려오고,

용돈 봉투 사러 매장 돌아다녔던 이번 한 주.


원 없이 꽃을 만지고, 디자인을 구상하고, 꽃 내음을 맡았던 이 시간들이 내게 준 기쁨은 돈으로 측정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무거운 거 잘 못 드는데도 남편이 들어주겠단 거 혹여나 꽃 상할까 양팔 가득 꽃바구닐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 34살 플로리스트 써미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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