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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르다 Feb 11. 2018

한 명의 힘

사우디 영화 ‘와즈다’를 보고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상업영화라고도 일컬어지는 영화 <와즈다>의 한장면


“와즈다가 묻습니다.

세상의 시선 때문에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을 포기하거나 주저하고 있진 않나요?”

<와즈다>는 영화 제목이자 활기찬 성격의 사우디아라비아 10대 소녀인 주인공 이름이다. 여성의 자동차 운전이 법적으로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와즈다는 주변 시선이 곱지 않음에도 자신이 타고 싶은 자전거에 대한 의지를 쉽게 꺾지 않는다. 소수자는 외롭다. 100명이 모인 집단에서 홀로 다른 길을 걷는 다는 것은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주위의 시선이나 사람들의 반응, 혹은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피해가 올 때 처음의 의지를 지속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공동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을 때 그 규칙을 지키지 않는 1명을 확실하게 고립시키는 쪽은 규칙을 만든 사람보다는 규칙을 지키는 99명에 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는 구두를 신고 서 있는 10대 여학생들의 발을 타이트한 샷으로 보여주며 시작된다. 꾸란을 암송하고 있는 여학생들 가운데 와즈다의 신발이 유독 튄다. 운동화이기 때문이다. 아직 다 큰 성인도 아니지만 여학생들의 교복은 어깨부터 발목까지 덮는 긴 치마다. 꾸란을 암송하는 도중에 지나가는 친구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이유로 와즈다는 선생님으로부터 불려 나온다. 앞 두 구절을 외워보라는 선생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와즈다를 보고 한 아이가 비웃는다. 화가 난 선생님은 와즈다에게 땡볕에 나가 서 있는 벌을 준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여자만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와즈다는 철저하게 첫 장면에서부터 ‘소수’로 그려진다. 튀는 존재. 튀는 존재인 와즈다는 이슬람 율법을 잘 지키는 여성들 사이에서 첫 번째로 외면받는다. 보통 사우디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쪽은 남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원인 제공자 못지 않게 율법을 지키는 여성들의 따가운 눈총은 그 자체로 소수자를 향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와즈다를 낳다가 죽을 뻔 했던 엄마는 그 이후로 아들을 낳을 수 없게 되고 남편은 새로운 부인을 맞아 들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부다처제가 4명까지 법적으로 허용되는 나라다.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내 남편에 대한 권리 혹은 남편으로부터의 사랑을 4명의 여성과 4분의 1로 나눠가지는 슬픈 현실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아들을 낳을 수 없어 남편이 둘 째 부인을 맞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만 하는 와즈다 엄마는 자유분방한 와즈다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웃집 동갑내기 남자친구 압둘라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부럽다고 말하는 와즈다에게 엄마는 ‘여자는 자전거 타면 안 돼. 아이를 못 낳으니까’라고 야단친다. 와즈다가 주인공이지만 와즈다 엄마의 인생에 마음이 더 기울기도 한다. 엄마로서 딸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이 딛고 있는 현실에서 최대한 모나지 않고, 피해보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리라. 하지만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는 속담은 먼 나라에서도 통하는 법이다. 800리알에 달하는 새 자전거를 갖고 싶었던 와즈다는 1천 리알의 상금이 걸린 교내 꾸란 암송 대회에 나가 1등을 차지한다. 상금으로 자전거를 사겠다는 말에 교장 선생님은 상금을 팔레스타인에 기부하겠다고 하고 상금을 주지 않는다. 여자가 자전거 타는 것은 옳지 않고 정숙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와즈다 엄마는 순종적으로 살았지만 와즈다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환경에 계속적으로 저항할 인물로 성장할 거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영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탄압받아 온 사우디 여성들의 존중하지 못한 삶을 10대 소녀 와즈다의 눈으로 담담하게 고발한다. 10대 소녀의 시선은 순수하다. 순수한  와즈다의 시선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삶을 그려낸다. 감독은 이것이 옳다, 나쁘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것 같은 연출 기법을 선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스토리 라인과 영상 전개가 오히려 사우디 여성인권의 현실을 돋보이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티없이 밝은 10대 소녀 ‘와즈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가 전세계에게 화두를 던지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법적으로 여성의 자전거 및 자동차 운전을 금지하고 있었으나 2012년 영화 개봉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은 법적으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여성 감독인 하이파 알 만수르(Haifaa Al-Mansour)는 악습을 바꾼 ‘최초의 사우디 여성 영화감독’이 됐다. 최초는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처음 시도한 ‘한 명’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다. 자전거 타기를 넘어 혼자서 여행하기, 큰 소리로 웃기, 미니스커트 입기 등도 다른 사람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소신을 펼쳐 나가는 또 다른 와즈다 한 명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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