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MBC VR휴먼다큐멘터리<너를만났다>
그리움을 채우는 일의 형태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변모했다. 편지, 사진, 그리고 영상으로 그리움의 대상을 만났다. 이제 그리운 사람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이라 해도 말이다.
MBC의 <너를 만났다>는 MBC가 시도한 국내 최초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휴먼다큐멘터리다. 시즌 1, 2는 김종우 PD, 시즌 3은 이모현 PD가 각각 연출을 맡았다. 연출자는 달라도 프로그램의 기본은 같다. 세상을 떠난 이, 그리고 그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이를 가상현실에서 만나게 해준다. 시즌 1에서는 희귀병으로 7세에 세상을 떠난 딸 강나연 양과 어머니 장지성 씨가 만났다. 시즌 2에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 성지혜 씨와 남편 김정수 씨가 만났고, 시즌 3에서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 유인애 씨와 딸 김하나 씨가 만났다. 그중 김종우PD가 2021년 1월에 연출한 <너를만났다2- 로망스>가 ‘한국PD대상-시사교양부문’을 수상했다.
김종우 PD는 ‘하늘나라에 있는 가족을 다시 만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으로부터 기획을 시작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제작진은 고인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했다.
그동안의 미디어는 글자, 소리, 영상 등을 통해 현실을 재현했다. 수용자는 감각 일부를 할애하여 ‘재현된 현실’을 인지했다. 그런데 가상현실은 현실 재현의 수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실제와 거의 동일한 조건에서 수용자는 오감을 모두 동원해 감각한다. 매우 높은 수준의 몰입 과정에서 수용자는 재현된 현실과 실제 현실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따라 기술은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다. 김종우 PD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에 가상현실 기술을 적용했다. 삶의 의욕을 잃었던 치매 노인이 가상현실을 통해 바다를 보며 환호하는 장면을 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김 PD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너를 만났다2-로망스>는 2020년 1월, 총 2부에 걸쳐 남편 김정수 씨와 고인이 된 아내 성지혜 씨 부부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50대 김정수씨는 성지혜 씨와 20대에 만나 연애 끝에 결혼했고 5명의 자녀를 낳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 성지혜 씨가 암에 걸렸다. 투병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홀로 아이들을 기르던 남편 김씨는 <너를 만났다2-로망스> 제작진에게 출연을 신청했다. 아내를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엄마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길 바랐다.
프로그램은 남편 김 씨와 5남매의 기억 속에 있는 고인을 불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추억의 장소와 사건 등을 가상현실로 어떻게 구현해내는지도 가족 인터뷰와 교차하여 설명한다. 김 씨와 아이들이 일상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이겨내며 살아내고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마침내 프로그램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들은 그리운 이를 만난다. 재회할 장소는 가족들이 함께 살았던 경기도 파주의 아파트, 그리고 종종 나들이 갔던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의 숲길이었다. 추억의 장소에서 남편은 투병 이전 건강한 모습의 아내를 만난다. 남편은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고 편히 쉬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자녀들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모든 방송 컨텐츠의 힘은 현실에서 비롯한다. 컨텐츠가 담고 있는 내용을 실제 삶에 대조하고 대입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울고 웃으며 공감하고 위로 받는다. <너를 만났다2-로망스>는 우리 모두 한 번쯤 겪은 이별 이야기이자,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청자들은 부지불식 가운데 각자의 경험을 부부의 이야기에 결부하여 ’그리움‘이라는 큰 공감을 느낀다. 김종우 PD는 “비슷한 사연을 가진 시청자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는 글을 남긴 것을 봤다. 이런 걸 볼 때면 참 감사하다"고 <스타투데이>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너를 만났다2- 로망스>의 제작진은 부부의 재회를 담은 휴먼다큐멘터리에 더하여, 일종의 번외편으로 ‘가상현실 저널리즘’을 구현한 <너를 만났다2 - 용균이를 만났다>도 제작하여 방영했다. 가상현실을 영상 프로그램의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었다.
제작진은 20대에서 50대까지 12명의 시민을 초대했다. 체험자들 가운데는 고 김용균 씨의 사고에 대해 아예 모르거나, 뉴스에서 언뜻 봤지만 정확히 어떤 사고였는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제작진은 이들에게 고인이 작업했던 공간을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그곳은 좁은 복도를 따라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가 초당 5m의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작업 현장이었다. 고인은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체 사이에 낙탄이 끼는지 확인하고, 쌓인 낙탄을 치우는 업무를 맡았다. 위험한 작업이지만, 두 사람이 1개 조를 이뤄 작업해야 한다는 원칙은 그 공간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제작진은 체험자가 가상공간 속에서 고인의 작업 현장을 이해하고 그 삶을 들여다보는 경험을 제공했다.
활자 또는 영상 기사로 이 사건을 접했던 이들은 청년 노동자의 죽음을 사소한 뉴스거리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현장을 재현한 가상현실을 접한 체험자들은 죽은 이에 대한 깊은 공감,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회 의식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해외 유력 언론은 이미 가상현실 저널리즘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김종우 PD는 시리아 난민 어린이가 국경을 넘는 모습을 가상현실로 재현한 <뉴욕타임스> 보도를 소개했다. <너를 만났다2- 용균이를 만났다>의 VR부스를 만들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등 한국에서도 가상현실 저널리즘이 본격화되길 기대한다고 제작 후기에서 밝혔다. 이렇듯 가상현실 저널리즘은 활자, 사진, 영상 등으로는 전달에 한계가 있는 사건들의 실제 현장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독자의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다.
가상현실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엠블러매틱 그룹의 대표 노니 데 라 페냐(Nonny De la Peña)는 “언론산업이 붕괴하고 있지만 '디지털 리얼리티 저널리즘'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2016 넥스트 콘텐츠 콘퍼런스‘에서 말했다. 가상현실, 인공지능, 실감 콘텐츠 등의 첨단 기술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송 콘텐츠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MBC의 <너를 만났다> 시리즈는 이를 과감히 시도한 실험이자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