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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29. 2017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원심림


01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때때로 상상한다. 내가 홀연히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남은 사람들이 나의 빈자리를 어떻게 메워나갈 것인지 나는 결국 알 수 없을 테지만, 역시 궁금하다. 누군가는 나를 잊지 않고 계속해서 그리워할 테지만, 또 누군가는 내가 마치 없었던 사람인양 깔끔하게 잊을 수 있을 테다. 나는 누구에게 대체 가능한 사람인지 따져본다.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고개를 흔들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한다. 내가 이대로 갑자기 사라진다는 가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흥미롭다. 나는 내가 앞으로도 최소한 70년은 더 살 것이라 믿고 있으니 이러한 상상을 우울함에 빠지지 않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다.


사람은 모두 태어나고 100년가량을 살아가다 예외 없이 죽지만, 자신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 정말로 믿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매 순간 죽음이 눈앞에 당도해 있다고 생각한다면, 깊은 비관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걱정만 하다 세월을 다 보내 버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의 죽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을지언정 믿고 있지는 않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건축도 태어나고 죽는 것과 같은 생애주기를 가진다. 비어있는 땅에 지어지고, 시간이 지나며 여러 모습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 땅에서 사라진다. 그것이 그 땅에 들어설 다음 건물을 위한 철거든, 세월에 의한 붕괴든 예외는 없다. 하지만 보통의 건축가는 언젠가 사라지게 될 건물의 모습을 깊게 고려하여 도면을 그려내진 않는데, 죽음을 믿지 않는 우리들과 비슷한 맥락이다. 죽음보다는 삶의 순간들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건축이 그러한 것인지를 묻는다면, 또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반례는 존재한다. 사람들이 모두 죽을 것을 알면서도 살듯이, 곧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지어지는 건축도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파빌리온(Pavilion)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사전 상 파빌리온의 정의는 조금 모호하다. 본채와 떨어져 있는 정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운동회에서 사용되는 천막을 일컫기도 한단다. 그게 아니라면 뜬금없이 만국박람회에 세웠던 진열관이라고까지 말한다. 파빌리온의 명확한 정의는 그 어원에서부터 찾아야 맞을 것이다. 파빌리온(Pavilion)은 라틴어 파필리온(Papilion)에서 유래하였는데 나비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텐트를 의미한다. 이러한 뜬구름 잡는 정의의 조각들을 모두 맞춰보면 결국 파빌리온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파빌리온은 그늘을 만들기 위한 작은 건축을 의미한다.


건축에서는 두 가지 정도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파빌리온이라 칭한다. 첫 번째는 가설 건축물일 것. 가설 건축물이라고 함은 잠시 동안 그 자리에 머물다 곧 사라지게 되는 건축물을 뜻한다. 그러니 파빌리온은 언제나 지어지는 것뿐 아니라 어떻게 사라질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두 번째는 사람들을 쉬게 할 것. 사람들이 파빌리온으로 다가와 머물고, 쉬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건축에서 요구하는 파빌리온의 기능이다.



1년에 한 번, 국립현대미술관의 앞마당에서는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이라는 건축 전시가 열린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사진이나 모형을 보는 전시가 아니다. 실제로 마당에는 건축물이 지어져 버린다. 조건은 세 가지다. 그늘, 쉼터, 물을 포함할 것. 파빌리온의 조건이다.


<지붕 감각>, 2015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규모의 이 전시는 사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20년이 넘도록 계속 진행되고 있는 Young Architects Program이라는 전시의 연장선이고, 한국에서 시작한 지는 올해로 4년 차가 되었다.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의 요구조건은 명백하다.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을 쉬게 할 것. 그러기 위해서 많은 건축가들은 다양한 방식의 그늘을 제안한다.



건축가에게 파빌리온 설계란 어찌 보면 답이 여러 개인 수학 문제를 하나 건네받은 것과 같다.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들이 있고, 맞춰야 할 요구 조건이 있다. 요구 조건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을 만드는 것. 문제는 주어진 예산이다. 돈만 무한정 쓸 수 있다면 어려운 것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주어진 대지와 예산 안에서 어떤 아이디어의 그늘을 제시하는지가 건축가들에게 던져진 수학 문제인 셈이다.




02 사람이 만든 숲


나에게 언제나 쉼은 나무 아래 있었다. 눈을 감고 휴식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늘 나는 나무 아래에서 책 한 권을 펼치고 읽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가고, 바람이 지나가니 그에 따라 머리 위의 나뭇잎이 흔들리며 사르륵 소리를 낸다. 맑은 날이지만, 나무 아래 그늘에 있으니 머물기가 알맞다. 그래서 나에게 쉼이란 나무가 주는 그늘이다. 건축가의 생각도 같았던 모양이다. 숲을 만들어 마당에 심어놓은 것을 보니.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형광빛이 도는 녹색의 나무들이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동그랗게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연두색의 플라스틱 망은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기둥에 받쳐져 살짝 띄워져 있다. 사람 키보다는 크지만, 건물보다 높지는 않다. 맞다. 이것은 나무. 나무들의 모임, 숲이다.



딱 떨어지는 사각형의 마당 안에 건축가는 자유롭게 배치된 나무들을 데려다 놓았다. 도심 속에서 각 잡고 서 있는 건물들의 긴장을 약간 풀어 준다. 조금 더 자연스럽고 가벼운 공간으로 탈바꿈된다. 미술관이 주는 진중한 분위기를 물 탄 듯 흐려준다. 비록 진짜 살아 있는 식물은 아니더라도, 나무는 그런 힘이 있다. 공원은 그래서 좋다.



솔직히 말하자면, 보자마자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는 알겠으나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단정 짓고 말았다. 옷장에도 검은 옷들이 가득 차 있는 무채색 인간인 나는 인위적인 초록색이 불편했다. 게다가 누가 봐도 너무 나무이지 않은가? 쉬어가라고 인공의 숲을 만들어 버린 이 계획안이 나는 너무 노골적이라고 판단했다. 문제를 너무 쉽게 푼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그것은 내가 이곳, 원심림의 해설을 듣기 전까지 그러했다.




03 바람이 멈추자 그늘이 드리운다


일부 사람들은 건축이 예술이라고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에 건축이 예술이 아닌 이유는 자명하다. 아름답기만 할 뿐이라면 건축은 건축으로써 존재할 수 없다. 기능해야 한다. 주어진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은 예술적 요소를 가지고 있을 수는 있으나 완벽히 100% 예술일 수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문제를 해결해 줘야 건축이라는 소리다. 건축은 필요하다면 비바람을 막아줘야 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바깥이 더우면 내부는 최대한 시원할 수 있도록 햇빛을 막아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위협을 피해 들어갔던 동굴에서부터 건축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이곳, 원시림에서 건축가가 주어진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냈는지 뜯어보자.



그늘을 만들어야 했다. 사각형의 넓은 야외 공간에서 사람들이 쉬어야 했으니까. 그러려면 통상적으로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 해를 막을 수 있는 무언가가 넓게 펼쳐져야 한다. 무언가를 넓게 펼치기 위해서는 떠 있을 수 없을 테니 그를 받치는 구조가 필요한데, 구조가 생겨 넓은 무언가를 잡고 있기 시작하는 순간 또 다른 문제가 발발한다. 바람이 불면 하늘에 연을 띄우는 것과 같은 원리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모든 것이 날아간다.


가장 첫 번째 해결안은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게 튼튼한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 기둥을 땅 위에 세워둘 것이 아니라, 땅 속 깊숙이 묻거나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을 무거운 물체를 기둥과 함께 땅에 묻어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어둔다. 그런데 그러면 돈도 같이 땅에 묶인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강력한 구조는 그만큼 비싸다. 보이지도 않는 땅속에 돈을 묻어두니, 땅 위에 사람들이 와서 쉴 곳 자체에 쓸 돈이 얼마 남지 않는다. 난제다.



모순이라는 단어는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낼 수 있는 방패를 동시에 판매하였던 중국 초나라의 상인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이건 마치 그런 비유와 비슷하다. 싸고 예쁜 것. 단순하지만 화려한 것. 신속하고 정확한 것.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자 하는 역설. 이곳에서는 돈을 땅에 묻고 싶지 않으니 가벼운데,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으면서, 사람들이 쉬어야겠으니 그늘을 만들긴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http://lifethings.in/mmca/


그래서 건축가는 바람이 안 불 때만 그늘을 만들기로 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것처럼 바람이 불지 않을 때만 얼른 그늘을 만들다가 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움직임을 멈춘다. 어차피 바람이 세게 불 때면 사람들은 그늘이 강렬히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축가의 계산이다.



센서로 바람의 세기를 감지한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나무 위에 달린 모터는 돌기 시작한다. 플라스틱 망은 모터가 세게 돌면 돌수록 넓게 퍼진다. 밖으로 향하려는 원심력 때문이다. 원심력을 이용한 장치이기 때문에 건축가는 이 인공의 나무 한 그루에 원심목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크게 부푼 플라스틱 망은 햇빛을 막아 그늘을 드리운다. 하나하나가 거대한 그늘을 만들지는 못해도, 여러 개가 모여 전체적인 그늘 하나를 바닥에 수놓는다.



반면 바람이 불면 모터는 정지한다. 플라스틱 망 자체에는 큰 힘이 없기 때문에 중력에 따라 땅으로 흘러내린다. 기둥을 감싸고 있는 꽤 날씬한 모양새가 되니 바람이 불어도 큰 저항을 받지 않는다. 바람은 그 사이를 통과해 지나간다. 그 자체로 이미 구멍이 숭숭 뚫린 망인 덕분에 더 쉽다.


http://lifethings.in/mmca/


도는 것은 하나 더 있다. 원심목에는 각각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동그란 형태의 벤치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벤치들에는 바퀴가 달려 원심목 주위를 빙빙 돌 수가 있다. 모터의 회전 속도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하는 원심목들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원심림의 모양이 변한다. 벤치들은 때로 가까이 붙어 있기도 하고, 멀리 떨어지기도 한다. 필요할 때에는 그림자가 생기는 방향으로 벤치가 따라가야 한다.





원심림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이라는 전시에 대해 건축가가 제시한 하나의 답안이지만, 또 다른 질문이기도 하다. 건축이 으레 정적이고 딱딱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이다. 건축도 움직일 수 있고, 변할 수 있고, 심지어는 가볍게 움직이는 망의 형태일 수도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사진이라는 미디어는 움직이는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어쩔 수 없는 태생의 한계가 있습니다. 움직이는 것들은 아직까지 영상이 가장 와 닿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에서 유튜브에 올려놓은 영상입니다. 두 영상 모두 1분 남짓이니, 원심림을 아직 방문하지 않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v=4nSsRwFrj2g


https://www.youtube.com/watch?v=o6ONaMRfJ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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