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술을 마시며 나눈 이야기들

<어쩌다, 술>, 김혼비

by 선아키







1

빔바*에는 노트 한 권이 있다. ‘우리가 술을 마시며 그린 그림들’이라는 제목을 가진 무지 노트인데, 그 안에는 너와 나의 다름과 우리가 서로 가진 관계들에 대한 심오하고 철학적인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술은 대화를 더욱 윤택하게 하기도 하지만, 흰 종이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 획들을 더 거침없게 만들기도 한다.

너와 나는 그리 다를 것 같지 않기도 하고, 우리가 가지는 관계들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쉬이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술을 함께 마시는 여러 친구들과 그림들을 그려보며 내 고정관념을 고쳐먹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르다. 그것도 엄청 다르다. 이 경험은 놀랍게도 나의 가치관이 가지고 있던 협소한 폭을 조금 더 넓혀주었다.


*빔바는 작업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술장을 기반으로 하는 바로, 우리는 빔바에서 친구들을 공유한다. 초대와 예약을 통해 방문하는 손님들은 우리가 함께 마실 술을 입장료로 삼고, 빔과 나는 안주를 준비한다. 키핑은 2개월까지 가능하다.



2

<어쩌다, 술>은 대단한 지식과 엄청난 교훈을 주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강한 애정과 그를 통해 얻게 된 여러 경험과 추억거리를 풀어놨을 뿐이다. 김혼비 씨가 구사하는 각종 라임을 활용한 농담들과 같이 전해지는 그녀의 추억들은 그 자체로 아주 유쾌하지만, 동시에 나의 추억들도 함께 상기시켜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김혼비 씨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나도 즐거운 기억을 술을 통해 공유하게 됐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술이라는 핑계 하나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포장됐다. 그마저도 서로 깔깔 웃고 만다. 이게 다 술 때문이라고, 누구든 다 그런 거라고, 우리가 가진 까다로운 기준을 조금 더 느슨하게 만든다.



3

글을 쓸 때에는 언제나 감정이 넘칠 때였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거나, 너무 싫어했을 때. 쏟아져 나오는 감정들을 갈무리하는 수단으로써 써 내려가는 것에 더 가까웠다.

술은 글이 감정을 갈무리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냈다. 술은 말 그대로 감정을 몇 배나 증폭시켜 내놓았다. 이성의 끈들을 조금씩 풀어헤쳐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게 만들었으며, 즐거울 때면 신이 나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좋지 않은 감정도 증폭시키므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술을 마시지 않을 것. 그것만 주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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