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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l 28. 2019

셀프인테리어와 네스트호텔과 오즈의 마법사

2019년 7월 마지막 주말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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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마무리하는데, 이번 주말은 유난히 길었다. 많은 일을 했기 때문일까, 여러 생각들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생각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몸을 움직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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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 호텔을 걸어두고, 금요일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공사가 이어졌다. 우리 모두 디자인을 하고, 도면을 치고, 현장에도 나가지만 결국 인테리어는 셀프로 귀결된다. 가장 비싼 것은 인건비이기 때문이다.



각자 롤러와 붓을 들고 벽과 천장을 칠하면서 책읽아웃 팟캐스트를 들었다. 라디오는 한 번도 즐겨 들은 적이 없었는데, 이제와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좋은 진행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매 회차마다 한다. 공감은 큰 힘을 갖는다.


메쉬 커피와 편의점 맥주로 동력을 얻은 페인트칠은 오후에나 일단락됐다. 아직 끝은 아니었으나, 벽과 천장이라도 색을 칠해놓고 나니 큰일을 하나 마친 것과 같은 기분이다. 우리가 내다보고 있는 좋은 공간으로 얼른 탈바꿈시키고 싶어서, 작은 일이라도 빨리 쳐내고 싶다. 오늘은 주방 가구장의 손잡이들을 떼고, 화장실과 하나 되어 있던 거울과 수건장을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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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트호텔로 향하는 자기 부상 열차에선 무지개를 만났다.


노숀이가 아이폰을 집어 들고 무지개를 찍더니 묻는다.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동화가 무슨 동화였더라? 그게 오즈의 마법사야? 양철 인간이 무지개를 찾는 것이던가? 사자인가?”


나는 답한다.

"모르겠어. 양철 인간이 뭘 찾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자가 찾는 것은 용기야!”


노숀이가 다시 묻는다.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가 뭐였지? 기억이 안 나. 이렇게 동화에서 멀어지면서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갖지 못하는 건가 봐. 우리가 동화를 잊어서 그래.”


동화를 잊어서, 우린 더 이상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는 노숀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왠지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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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지는 모습을 한참 테라스에 나가 지켜보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 마지막 노을이 짙은 색을 뿜으며 사그라드는 그 순간, 하늘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더불어 네스트호텔 건물도.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데, 뒤에서 노숀이가 웃는다. 빔과 내가 다른 자리에서 다른 타이밍에 뒤를 돌아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는데 결국 찍고자 하는 것이 같다며. 빔의 회사 분은 어디서 그런 친구들을 만났냐고 물어보셨다고 했다. 학교에서 만났다고 재미없는 대답밖에 해 드릴 수가 없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운명적 파트너들의 만남으로 이야기를 꾸며내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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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들어와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를 찾아봤다. 하지만 오즈의 마법사 줄거리는 순수한 마음을 갖기엔 모조리 사기로 점철되어 있음을 알게 되어 황망한 마음이었다. 착한 마녀고, 위대한 마법사 오즈고, 모두 다 사기꾼이다. 이런 동화를 즐겨 읽으며 자랐다니. 노숀이는 읊조렸다.


by 빔


호텔에서 우리는 영화 <인생 후르츠>를 보며 김치볶음밥에 위스키를 마셨다. 영화는 마음을 울렸고, 김치볶음밥은 내가 먹은 김볶 중 가장 비쌌으나 손가락에 꼽는 맛임은 틀림없었다. 네스트호텔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산지도 잊고 있었던 글렌리벳은 왠지 예상치 못한 보너스와 같은 느낌이라, 룰루랄라 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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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은 네스트호텔은 여전히 좋다. 조금씩 세월의 흔적들이 보이긴 했으나, 역시 치밀하게 짜인 공간이 주는 힘은 여전했고 서비스 또한 지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한여름, 극성수기에 방문해 비싸긴 했으나 또 따져보자면 못 갈 정도로 비싼 것도 아니었다.



당신만의 안식처가 되고 싶다는 네스트호텔의 브랜딩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실천 중이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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