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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30. 2020

건축사 시험에선 아직도 손으로 도면을 그린다

건축사 시험의 신기한 점 몇 가지


지난 4월 말, 5월 초쯤부터 건축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고, 지난주 토요일에 첫 건축사 시험을 치렀다. 건축사 시험에 대해서는 준비를 제대로 하기 전까지 나도 제대로 아는 바가 많지 않았다. 대학교 때부터 알음알음 들었던 단편적인 정보들 몇 가지만 듣고도 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부디 그 시험을 칠 필요가 없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건축사 시험을 일단 한 차례 치러봤다.


주변 지인들에게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 정확히 내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이 업계와 관련이 없다면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건축학과를 나오고 나서 시험을 치기 전까지도 나도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간단히 건축사 시험이 도대체 뭔지, 어떻게 보는 시험인지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재미 삼아 읽을 수 있게 간단하게.




1. 건축사 시험은 무엇인가?


정식 명칭은 건축사 자격시험이고, 합격하면 건축사 자격을 얻는다. 건축사를 따면, 건축사사무소(설계사무소)를 차릴 수 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으면 공인중개사 사무소(부동산)를 열 수 있는 것과 같다.


건축 설계 일 자체는 건축사 자격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신축이나 대수선(구조를 바꾸는 리모델링)을 진행할 때 허가를 받기 위해서 건축사 자격증이 필요하다. 건축사가 없이는 구청에 허가를 신청할 수 없다. 그 외에도 건축사가 있어야만 감리, 용도변경 등의 여러 업무가 가능하다. 보통 설계사무소의 대표가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경우가 많다.




2. 건축가면 꼭 건축사를 따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회사를 계속 다닐 생각이라면 굳이 따지 않아도 무방. 독립해서 설계사무소를 차리기 위해서라면 필요하다. TV나 잡지에 소개되는 건축가 중에서도 건축사가 없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그들은 모두 협업하는 건축사가 따로 있는 것.




3. 누구나 건축사 시험을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2019년 이후로 건축사 예비시험이 폐지되었고, 이제는 5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하거나,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실무경력 3년을 채워야만 응시할 수 있다. (사실 경력이 차지 않더라도 시험 자체는 볼 수 있다. 자격 미달로 합격할 수 없을 뿐.)


4년제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건축사를 따기 위해서는 건축전문대학원에 반드시 진학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실무에 20년 있었더라도 5년제 건축학과나 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이제 건축사를 딸 방법은 없다. 꽤나 견고한 성벽이 갖춰진 것과 같은 느낌이다. 비전공자는 앞으로 영영 들여보낼 의지가 없어 보인다.




4. 실무경력 3년은 어떻게 채우나?


건축사사무소에서 3년 간 근무해야 한다. 많은 수의 졸업생들이 이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3년은 회사를 채워 다니려고 노력한다.


딱 회사에 입사하는 날부터 카운트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사 등록원에 10만 원을 내야 그때부터 쳐준다. 분명 일을 하고 있음에도 내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고까워 돈을 안 내고 있던 나는 내 경력 1년 반 정도를 날려먹었다. 10만 원 안 내면 안 쳐준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고 억울한 부분이다.




5. 시험은 어떤 형식인가?


놀랍게도 아직 건축사 시험에서는 손도면을 그린다. 실무에서 손 도면을 그리는 경우가 있냐고? 없다. 모두가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건축사 시험 준비 학원에 가서 작도를 처음 배워 본다. 학교에서도 안 해봤다.


(왼) 학원 수업 전경 / (오) 선 그리는 연습 처음 해 봄


왜 아직도 손도면을 그리냐고? 여러 문제들이 있을 텐데, 일단 보통 회사에서 사용하는 오토캐드 프로그램을 시험에서 사용해야 할 시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시험을 보는 장소도 마땅찮을 것. 현재는 중, 고등학교 반에서 시험을 보고 있다. 각자의 제도판과 삼각자 등을 시험장에 지참한다. 


시험장 4층까지 제도판을 낑낑대며 들고 올라갔더니 다음 날 근육통이 살짝 왔다. 제도판은 꽤 무겁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누군가는 시험장에 제도판을 실수로 안 들고 간 적이 있다는 사연도 들었다. 그러면 그 시험은 깔끔히 포기해야 할 테다.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시험 방식이 바뀌길 바랐지만 앞으로도 쉬이 바뀔 것 같진 않다.




6. 몇 과목이 있는가?


실기냐, 필기냐, 1차와 2차 시험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건축사 시험은 필기는 없고 모두 실기다. 객관식은 없고 모두 도면으로 표현한다. 애초에 암기를 하고 달달 외우는 식의 시험이 아니다. 시험장에 가면 사람들은 문제를 기다리며 빈 종이 앞에서 멍을 때리고 있곤 한다. 벼락치기로 뭔가 급격히 달라지거나 하지 않는다.


총 3교시. 1교시 당 3시간씩 시험을 본다. 하루에 다 보는 것 맞다. 아침 9시부터 보기 시작해서 다 끝나고 나오니 저녁 7시 반이었다. 밤이었다. 1교시에 두 문제, 2교시에 한 문제, 3교시에 두 문제. 총 다섯 문제가 나온다. 총 다섯 장의 도면을 그리면 되는 셈.




7. 한 번에 3교시 모두 합격을 해야 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1교시를 합격했다면, 그다음 시험에서는 1교시 시험은 보지 않아도 된다. 다섯 번의 시험 동안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다섯 번 시험을 칠 동안 1, 2, 3교시를 각각 합격하면 되는 것.


한 과목이라도 붙어 놓으면 그다음 시험 준비 때 훨씬 수월하다. 하나씩 깨 나가면 된다. 60년대부터 지금까지 1년에 한 번씩 시험이 열렸으나, 2020년부터 1년에 2회 시험이 열린다. 얼른 한 교시씩 떨구기 좋아졌다. 1년은 텀이 좀 길지 않았나 싶다.


건축사 시험의 합격률은 매년 다르고, 앞으로도 좀 달라질 것 같지만 10퍼센트 초반 대다. 과목마다 합격률이 다르다.




8. 학원을 다니지 않고 건축사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지?


교과서가 있으면 교과서로 공부를 하라고 하겠는데, 건축사 시험에 교과서 같은 것은 없다. 건축사 시험 측에서 제공하는 모범 답안이라던지, 해설 같은 것도 없다. 건축사 시험 대비 학원에서만 학원에서 만든 모범 답안과 해설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실무를 20년, 30년 했어도 학원 도움을 받지 않으면 합격할 수 없다. 이건 설계 아니고, 문제 풀이고 훈련에 가깝다.


문제 풀이 중


한 교시 당 3시간의 시간을 주지만, 꽤 빠듯하다. 완도(도면을 모두 완성하는 것)만 하고 나왔으면 성공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할 정도다. 그러니까 문제를 푸는 방식 자체를 습득하지 않는 이상 시간 내에 완도 할 수 없다.




9. 채점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채점 기준과 내 답안지를 다시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루머가 많다. 어떤 채점관에게 내 시험지가 돌아가느냐에 따라 합격 여부가 달라진다느니, 합격관이 보기에 글씨도 잘 쓰면 조금이라도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느니. 아니면 그냥 오로지 운이라느니.


학원에서 듣기로는, 예전엔 없었지만 지금은 체크리스트가 생겼다고 했다. 문제에서 제시하는 조건들을 도면에 표현을 했는지 보고 점수를 매긴다고 했다. 하지만 체크리스트는 역시 공개되지 않았다.


모두 다 사람이 채점을 해야 하는 부분이라 그런지 채점 기간이 길다. 9월 26일에 시험을 쳤지만, 합격자 발표는 11월 13일로 예정되어 있다. 




10. 건축사 시험이 실무에 도움이 되는지?


전혀. 건축법을 조금 외울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 실무에 적용되는 법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이것은 오로지 누가 문제를 꼼꼼히 읽고 지문에 맞게 점수를 따내느냐의 싸움이다. 오히려 생각이 굳으면 굳었지, 설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번에 시험에 붙었다고 설계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건축사가 없다고 해서 설계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건 오로지 귀찮은 일을 떨궈내기 위해 누가 시간 투자를 했느냐에 대한 문제다. 






시험을 바짝 준비하고 시험이 끝났더니, 팽팽하게 당겨졌던 끈 하다가 끊어진 느낌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내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이 시험의 비효용성에 대해서 논하자면 끝이 없다.


다만 다들 제도판 위에서 도면 걸어놓고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길래, 한 번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정리해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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