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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감각으로 듣기 위해서

<음악>

by 선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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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틀어 놓을 음악을 고르다 에픽하이 새 앨범이 나온 걸 들으셨냐 회사 분들에게 묻고 시시콜콜한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에픽하이 CD가 집에 있었는데! 어, 저도요. 그때 그게 몇 집이었더라? 저는 2집 가지고 있었어요! 어, 그럼 나도 2집인가 보다. 신사들의 몰락, 그런 노래들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에픽하이 2집은 2004년도에 발매됐고, 당시 난 중학생이었다.


지금이야 가수들이 새 노래를 낸다고 해서 CD를 사서 듣는 일은 드물지만(심지어 CD플레이어도, PC에 CD-ROM도 없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는 용돈을 모아서 CD를 사 들었다. 만화책을 제외하면 가장 큰 지출이었다. CD의 비닐을 뜯고 케이스 앞쪽에 끼워져 있는 가사집을 펼쳐놓고 1번 트랙부터 차례로 듣는 걸 좋아했다. 거실뿐 아니라 내 방 안에도 CD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고, 학교에는 손바닥만 한 CDP를 들고 다녔다.


ipod-mini-1st-gen.png
ipod-nano-4th-gen.png
ipod-shuffle-2nd-gen.png 오랜만에 글을 쓰며 찾아봤다. 아이팟 시리즈들.


그러고 보니 에픽하이가 CD로 들은 거의 마지막 한국 앨범이었나 보다. 2004년의 어느 날부터 나에게는 4GB짜리 아이팟 미니가 생겼고, 그 이후엔 소리바다에서 주구장창 mp3 파일을 다운받았다. 소리바다에는 끊겨있거나 비어있는 파일이 종종 올라와있곤 해서, 잘못된 파일을 다운 받을 때도 많았다. 아이팟 미니 이후로 셔플, 나노, 터치를 거쳐서 아이팟 클래식을 오래 쓰다가 이제는 결국 스마트폰으로 넘어와 유튜브와 애플뮤직에 정착해서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음악에 한해서는 난 꽤나 앱등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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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와 CD, 중간에 MD를 거쳐서 MP3를 지나 지금의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듣는 수단은 달라졌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최고는 직접 듣는 음악이다. 직장인이 되어 페스티벌에 가서야 왜 사람들이 그렇게 직접 음악을 듣기 위해 돈과 시간과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지 이해하게 됐다. 온 감각으로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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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처음으로 이틀 간의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가게 됐다. 페스티벌엔 처음 가봐서 가까운 자리가 무조건 명당인 줄 알고 땡볕에 돗자리를 폈다가,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에 바싹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전까지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인 줄 알았는데, 페스티벌에 가니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었다. 쿵쿵 거리는 드럼 소리는 공기를 타고 와 온몸을 두드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금관 악기의 소리는 내 머리 어딘가에서 한참을 빙빙 돌고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이크를 잡은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정말 가깝게 들렸다. 내 앞사람들의 상체는 리듬에 따라 아래 위로, 양옆으로 흔들렸다. 내 방에서 혼자 들을 때엔 그저 짧게 흐르다 잊히곤 하는 3분 동안의 곡이 마치 쨍한 색감의 라이브 포토처럼 기억됐다. 물론 한 손에 맥주가 꼭 들려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음악일 수 있지 않은가?





최근 필름 카메라 속에 들어있던 필름을 꺼내 현상을 하게 됐다. 메일로 받아 본 파일에는 페스티벌이 있었다. 나와 친구들은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을 보러 갔던 참이었다. 해가 쨍하니 떠 있던 한낮부터 선선한 바람이 부는 어둑한 저녁까지 몇 시간이고 음악을 들었다. 많이 웃었고, 날이 정말 좋았다. 바람은 상쾌하고 마스크는 없었다. 페스티벌은 내가 새로운 음악을 얻어가는 중요한 시간이고 경험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항상 같은 노래만 듣고 있다. 다음 페스티벌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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