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의 필요충분조건

<농담>

by 선아키

1 농담의 조건


농담을 잘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농담의 의도를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그 자체로 농담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농담은 농담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나서야 농담으로 불릴 수 있게 된다. (한 문장에 농담이 너무 많이 쓰이니 게슈탈트가 붕괴되는 것 같다.)


농담의 조건은 첫째로, 농담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나는 왠지 성대모사나 개인기가 농담처럼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건 아마 각 잡고 '요이~땅!' 하며 시작되어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대화의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캐치해 농담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감탄하고야 만다. 딱 끼워 맞춘 듯 그 자리에 들어갈 말과 행동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재미없을 말들인데도, 지금이라 재밌는 농담. 그건 어쩌면 관찰력과 기억력과 순발력을 모두 갖춘 사람만의 기술인지도 모른다.



둘째로, 농담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져야만 한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즐거워야 농담이 될 수 있기 때문에 TPO를 지켜줘야만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불쾌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농담이 아니라 무례이거나, 희롱이거나, 비하일 것이다.


농담이라는 단어 자체가 오염될 때도 있다. 이를테면 '농담으로 한 말을 가지고'라고 쓰일 때다. 혹은 '농담도 못 해'로 쓰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농담이라는 단어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대해 방어적인 변명으로만 자꾸만 쓰여, 농담이라는 단어가 괜히 불쾌한 단어가 되어가는 것처럼 느껴져 농담에게 미안해진다. 농담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까.




2 농담의 필요


요 근래 들어 조금 더 농담을 잘 치고 싶다. 무작정 즐겁기 위한 농담에 더해(농담의 제1 필요성은 역시 재미이겠지만)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는 도구로서의 농담도 필요해진다. 낯선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고,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은 사람들에 더해 이제 막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 분들과도 함께 일하는 중간자가 되어보니 농담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나보다 선배들과 있을 때는 난 나만 생각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대화의 연결고리가 되어야 할 때가 있고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애써 흩트려 뜨리며 가볍게 띄워놔야 할 순간들이 생겼다. 서로에게 짜증을 내고 기운이라고는 다 빠진 무기력한 상황 속에서는 일이든 관계든 결코 더 나아지지 않으니까.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표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여유가 있다는 것. 즐겁고 기분이 좋은 상태라는 것. 상대방과의 대화를 지속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점. 그리고 또 어느 정도 이상 함께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기본 지식을 밑바탕으로 한다는 것. 그러니 농담을 잘한다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심각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여는 것보다, 가볍고 부드러운 공기 속에서 마음을 열어주니까.




며칠 전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여기가 좋은 이유> 책에 대한 인터뷰가 있었다. 처음 보는 분들과 나를 둘러싼 카메라 3대와 나의 옷깃에 고정된 마이크를 의식하자 몸에서 열이 났다. 목이 말라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때도 조금 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난 언제쯤 사람과 농담이 어렵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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