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졸업작품을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 교수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인생에 졸업작품은 딱 한 번뿐이니, 이때밖에 못할 프로젝트를 하라고. 이미 이 세상에 있는 거 말고, 새롭고 재밌는 것을 해보라고. 그래서 나의 졸업작품은 바다 안에 있었다. 관계의 전복을 위해서였다. 내가 주인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이 되어 관찰자에서 관찰대상으로 역할이 뒤바뀌는 곳. 나는 아쿠아리움을 바다 안에 집어넣는 프로젝트를 졸업 작품으로 삼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쿠아리움에 대해 조사도 많이 하고, 참고 이미지도 수없이 봤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아쿠아리움은 몇 번을 고민해봐도 역시 오키나와에 있는 추라우미 수족관이다.
졸업을 하고, 나는 진짜로 오키나와 비행기표 티켓을 끊었다. 가장 중요한 일정은 두 가지. 추라우미 수족관을 직접 가보는 것. 그리고 정말 바닷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 발을 살짝 담그는 것 말고, 정말 내가 이방인이 될 때까지 깊게 들어가 보고 싶었다. 스쿠버다이빙 체험을 예약했다.
추라우미 수족관에 도착해 사진으로만 봤던 수족관 앞에 서자, 나는 쉽사리 감상평을 남길 수가 없었다.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작았고, 고래는 정말 정말 컸다. 상상 속에서 지레짐작했던 느낌과 현실 속에서 느끼는 위압감은 확연히 달랐다. 인간에겐 이렇게 큰 수족관인데도 저 친구들에겐 얼마나 좁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나면서도 경이로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오래도록 수족관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내가 본 풍경을 어디엔가 담아가고 싶었는데, 나는 사진으로도 글로도 그림으로도 이것을 담을 수 없겠다는 생각에 눈에만 열심히 담았다. 푸른 바다에 들어가면 이런 느낌일까.
그래서 들어갔다. 자격증도 따서 홀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짧은 일정으로 방문한 여행객은 오직 스쿠버다이빙 체험만이 가능했다.
슈트를 입고, 산소통을 어깨에 짊어졌다. 바닷속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니, 강사님께 수신호를 배웠다. 언제라도 숨쉬기가 불편하거나, 다시 수면 위로 올라가고 싶으면 손짓을 하면 된다며 날 안심시키려 했다. 옆에서는 무서워서 바다에 들어가는 데에 실패한 사람이 있었는데, 반면에 난 굉장히 설레 하며 신이 나있는 상태였다. 산소통의 산소가 다할 때까지 바닷속에 머물고 싶어 할 것이라는 걸 난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산소통 어딘가를 잡고 강사님은 바닷속으로 나를 쑥 집어넣었다. 산소통의 무게 때문인지 쉽사리 바다 안쪽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날이 좋았고, 바다의 잔잔한 파도 물결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바다에서는 햇빛을 볼 수 있구나.
10m 정도 내려갔을까. 나는 나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다른 세상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푸르다 못해 초록색으로까지 보이는 바닷물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그곳엔 자유로워 보이는 물고기들이 있었고, 파도에 따라 움직이는 산호초들이 있었다. 내 주위를 물고기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강사님이 전해주는 빵 조각을 따라 물고기가 내 눈앞까지 다녀갔다.
입에 물고 있는 수중 호흡기 때문에 보이진 않았겠지만, 난 내내 웃고 있었다. 바닷속으로 더 자주 놀러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방인인 곳으로, 다만 몇 분밖에 머물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때처럼 바닷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자주 바다를 가려한다.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바다 입장에서는 고작 현관 정도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