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주는 힘
나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바다가 가까운 도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인 해운대와 광안리가 있는 도시이다. 내게 바다는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하느냐고?
응. 하지만 바다에 몸을 담그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을 좋아한다. 바다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을 가서도 종종 바닷가를 찾아간다. 바다를 보았던 도시는 대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2019년 11월, 모처럼의 긴 휴가를 맞이해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와중, 호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딜 가나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 푸른 초록과 짙은 파랑을 기대하며, 나는 그곳으로 떠났다.
@본다이 비치
엄마는 본다이 비치에 누워 모처럼 단잠을 잤다고 했다. 잠을 깊게 자지 못하는 엄마인데, 그날은 정말 푹 잤다고, 정말 개운한 낮잠이었다고 말했다. 엄마가 자는 사이, 나는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파도 위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그들을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부럽다- 하고 되뇌이다가, 그래도 물은 좀 무섭지-하고 중얼거렸다. 누군가는 낮잠을 청하고, 누군가는 서핑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가만히 앉아 바다와 시간을 보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
우리는 헬기를 타고 하늘에서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레이트 오션로드. 말 그대로 엄청난 바닷길이었다.
백사장에서 바라본 바다는 늘 지평선이 보인다. 바다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평선을 바라보면 '저쯤이 바다의 끝이겠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다. 하늘에서 바라보니 그렇지 않았다. 넓었다. 엄청나게 넓었다. 끝없이 펼쳐진 파랑을 보며 바다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사실로 다가왔다. 바다는 넓구나.
@세인트 킬다
세인트 킬다 해변에서는 펭귄도 만났다. 해 질 무렵에 맞추어 해변에 도착했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그렇게 투명했던 바다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암흑으로 변했다. 펭귄은 그 암흑 속에서 나타났다. 솟아났다고 해야 하나. 잔잔한 암흑 속에서 얕은 물결이 일고, 이내 귀여움으로 중무장한 작은 생명체가 뿅 하고 나타난다. 저 깜깜한 어둠 속에 이 귀여운 생명체를 품고 있었다니. 놀랍고도 신비로운 바다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변하는 존재라서. 바다의 순간들은 매 분 매 초가 다르다. 단 한 번도 같은 순간이 없다. 파도는 멈추지 않고 몰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며 시시각각 형태가 바뀐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편안해서. 세상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어도 바다는 늘 그곳에 있다는 사실이 묘한 안정감을 준다. 쉴 새 없이 변화하는 존재가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그 역설이, 바다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마지막 이유는 바다의 무한한 때문에.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없는, 눈앞에 무언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은 바다뿐이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답답할 때 바다를 찾는 이유도, 같은 이유이지 싶다.
함께 여행했던 엄마는 일주일 내내 바다를 찾아다니는 내가 신기했나 보다.
"부산에도 바닷가 많잖아. 니는 바닷가 사람이 이래 바다를 찾아다니노?"
"부산에서 태어나서 그런갑다. 근데 좋지 않나? 바닷가."
하지만 바라만 봐도 좋은 존재가 있다면, 찾아다니는 게 당연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