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이것은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이고, 아마도 코로나가 종식되고 난 이후 다시 느낄 수 있는 경험일 것이다. 2019년 5월, 나는 뉴욕을 여행했다.
뉴욕 여행 책과 블로그를 뒤적였다. 꼭 가야 하는 카페도 있었고, 셰프들이 오픈했다는 레스토랑들도 있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갤러리들과 유서 깊은 미술관들도 아주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정보의 바닷속에서 헤엄치다 뉴욕에 함께 가기로 한 나의 여행 친구인 빔과 나의 머릿속엔 문득 물음표 하나가 떠올랐다. 그럼 도대체 뉴욕의 밤은 어떤데?
여행은 언제나 낮이었다. 대체로 많은 여행들이 그랬다. 구글 맵에 찍힌 별들을 차례로 격파하며 돌아다니다 밤이 되어 숙소에 돌아오면 그렇게 그날 하루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특히 가게 문을 일찍 닫는 지역에 가면 금방 하루가 끝이 나곤 했고, 액티비티라도 하는 날이면 정신없이 기절하듯 잠들곤 했다. 그런데 뉴욕은 그렇지가 않았다. 뉴욕은 재즈의 배경이고, 스피크이지 바의 시초이고, 온갖 세계적인 연극과 뮤지컬이 쉴 새 없이 펼쳐지는 불야성과 같은 도시였다. 우리는 밤에도 뉴욕을 여행할 수 있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재즈바 앞에 도착했다. 공연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발견해 줄을 섰고, 그 전 공연을 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되기로 손꼽히는 재즈바에도 갔지만, 관광객이 없이 오직 동네 사람들만 가득 찬 재즈바에도 방문했다. 피곤한 날에는 숙소 앞의 재즈바에 터덜터덜 슬리퍼를 끌고 나가기도 했다. 큰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재즈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꼭 와인에 치즈를 곁들인 근사한 음식이 아니라, 맥주 한 잔으로도 공연을 끄덕거리며 볼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쪼르르 앞으로 나가 CD를 구매했다. 아마 이 CD를 들으면, 뉴욕 생각이 날 거야. 그렇게 기대하면서.
빔과 나는 양복점에도 찾아가고, 장난감 가게 간판도 지나치고, 일식집에도 가고, 핫도그 가게 안의 전화부스에 들어가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금주법의 시대에 생긴 스피크이지 바들은 전혀 관련 없는 다른 간판과 가게 뒤에 숨겨져 있었다. 위장하고 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숨겨져 있는 문고리를 돌리고, 잠겨 있는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후레시를 들고 앉아 있는 문지기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결국 스피크이지 바에 발을 내디뎠다. 바깥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공간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복작복작하게 앉아 칵테일이나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쿵쿵 거리는 음악 덕에 꽤 바텐더 쪽으로 몸을 기울여야 했다. 우리는 마티니를 마셨고, 올드 패션드를 마셨고, 위스키도 왕왕시켰다.
스피크이지 바의 매력은 문이 열리는 그 순간에 있다.
건물 전체가 한 연극의 무대가 되는 공연이 있었다. 아니,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져 내리고 마구 뒤엉켜 모든 경계를 무너뜨린 3시간이 있었다. 밤에만 문을 여는 호텔, 슬립노모어였다.
입장 전에 나누어주는 흰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 흰 가면을 쓴 관객들 사이로 배우들이 나타나고 언제 시작되는지도 모르게, 공연은 이미 여기저기서 막을 올렸다. 3시간 내내 층을 오가며 이동하는 배우들을 따라 뛰어다니느라 사실은 정신이 없었다.
배우가 내쉬는 숨소리마저 들리는 거리에서 연기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배우가 움직이는 동선을 방해하지 않으려, 때때로 썰물 빠지듯 관객들은 길을 내어주고 놓칠세라 재빠른 걸음으로 다음 신을 향해 달렸다.
밤의 뉴욕이 있었다. 이 세상 사람들 중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제일 잘하는 무언가를 뭉쳐 비벼 놓은 것과 같은 이 도시에, 밤에도 빛이 나는 공간과 음악과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겪은 가장 밝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