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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l 04. 2022

혼자 가는 단골집

단골


몇 주 째 반복하고 있는 루틴이 있다. 일요일 6시쯤이 되면 내비에 높은산을 찍는다. 높은산은 말 그대로 높이 솟은 산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고, 고맙게도 자양동에 둥지를 틀어 준 인도 짜이집이다. 내부엔 좌석도 없어서 보도블록 위에 간단히 의자 몇 개를 내놓고 잠깐 앉아 마실 수 있는데, 열악하다면 열악한 거리 위 벤치에 앉아 한 손에 들어오는 잔을 들고 호록 호록 짜이를 삼키는 그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 갖는 정기적 루틴이 될 줄이야.



아이스 짜이를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들고 온 책을 읽다 동네의 길고양이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높은산에서는 주변의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며 돌보고 있는데 고양이들은 각자 성격이 다르지만 주변 동네 분들이 호의적으로 대해주고 있는지 도통 사람을 무서워하질 않는다. 고양이 옆에서 쪼그려 앉아 고양이 얼굴 마사지를 해주다가, 오후 7시에 가까워지면 저녁을 먹으러 가야 하기에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선 다시 높은산에 들어가 테이크아웃을 위한 병입 짜이가 있는지 묻고, 일요일 저녁까지 남아있는 짜이 병들을 모두 달라고 한다. 내가 남은 애들을 모두 데려가겠다고 호탕하게 말하지만, 매일 만들어 두시는 짜이의 양은 정해져 있어서 많아봤자 두 병, 그마저도 병이 남아있지 않는 날도 있다.





우연찮게 SNS를 통해 알게 된 높은산에서 나는 처음으로 인도의 밀크티라고 할 수 있는 짜이를 접했는데, 영국 홍차를 베이스로 하는 기타 다른 밀크티와는 다르게 짜이는 훨씬 더 이국적인 향료의 냄새가 났고 부드럽다기보다는 알싸한 향이 코끝을 넘어 목구멍을 긁으며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까끌까끌하다는 말은 아니고, 스파이시한 향 때문에 그렇다는 거다.



처음엔 강하고 독특한 향 때문에 낯설게 느껴졌던 짜이가 그다음 날, 그다음 주에도 계속 생각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짜이를 더 격렬하게 좋아하게 된 동생 때문에라도 일주일에 한 번은 높은산에 들러 짜이를 사 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사장님들하고도 안면을 트게 되었다. 높은산의 사장님들은 E보다는 누가 봐도 I와 같은 성격을 가지셨는데,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매주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의 얼굴을 익히셔도 굳이 먼저 사담을 나누려고 하지 않으신다. 조용한 눈인사와 함께 주문한 짜이를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인 가게가 또 다른 I인 나에겐 충분히 편해서, 테이크아웃만 해도 되는 것을 굳이 앉아 한 잔 주문하고야 만다.





서울에서 내가 곧잘 방문하는 단골집들은 모두 나의 단골집이기도 하지만 나의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는 단골집이기도 해서 항상 사장님과 직원들과 떠들썩하게 안부를 묻고 농담을 던지고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성수동의 카페인 메쉬에서 그러하고, 압구정 쪽에 있는 바인 믹솔로지에서 그러하다. 이제는 없어진 한양대 앞 깜장 커피에서 그러했고, 술 있는 식탁에서도 그랬다. 단골이라면 역시 조금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여야 할 것 같은데, 높은산을 돌이켜보면 내가 매주 방문하는 이 조용한 찻집을 단골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잠깐 머물더라도, 멈추지 않고 자주 발걸음을 옮기는 곳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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