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우리 가족은 같은 동네에 30년이 다 되어가도록 살고 있다. 꽤나 자주 가게가 바뀌고, 종종 건물 자체가 바뀌는 모습을 본다. 한 동네가 통째로 허물어지는 것도 보았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걸 보면 조금 반갑고 많이 서글프다. 한 가게가, 건물이, 동네가 허물어진다는 건 나의 일상이 영원한 추억으로 바뀐다는 의미였다. 내가 자주 찾던 가게들은 더 이상 일상이 되지 못하고, 기억 속에 억지로 박제된다.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박제된,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만두집이 있다. 나의 첫 단골가게는 초등학교 담벼락 앞에 있던 '왕만두집'이었다. 얇은 납작만두안에 당면이 들어가 있었고, 그 집의 떡볶이 소스를 위에 뿌려 함께 먹었다. 이름은 '왕만두'였지만 이름값을 하는 만두는 아니었다. 얇은 피에 당면뿐이니 배가 찰리가 없었다. 그러면 나는 왕만두와 함께 아메리칸 튀김 - 오징어가 들어간 야채튀김이었다. 왜 이름이 아메리칸인지는 모르겠지만 - 과 떡볶이, 떡꼬치를 추가로 시켰다.
여름날이 되면 왕만두집에서는 팥빙수도 팔았다. 팥과 후레이크, 과일 몇 개, 떡 조금, 미숫가루 조금, 연유와 우유. 요즘같이 치즈니 망고니 멜론이니 하는 휘황찬란한 토핑들도 없었다. 딱 학교 앞에서 파는 빙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별 것 아닌 재료들로 만든 그 빙수가 나는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여름 내내 질리지도 않고 팥빙수를 사먹곤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가서도 종종 왕만두집을 찾았다. 어느 날 갔더니 왕만두집은 허름한 내부를 싹 뜯어고쳐 깔끔하게 새단장을 했더라. 그리고 또 어느 날 갔더니 주인 아줌마가 바뀌어 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인 것 같다. 더이상 왕만두를 사먹지 않게 된 게. 사람들은 주인이 바뀌면서 맛이 변했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맛에 민감한 편이 아니라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내가 그곳을 찾지 않았던 건 낯섦이 싫어서였다. 항상 가던 그곳, 그 집, 그 사장님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오랜만에 가도 나를 반겨줄 정겨움을 바란 것이지, 낯섦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단골집을 잃었고, 사장님은 단골손님을 잃었다.
그리고 어느날, 왕만두집은 아예 영영 사라졌다.
단골. 복잡한 한자어로 이루어진 단어 같지만, 단골은 순우리말 단어이다. 그것도 한국의 토속신앙에서 유래한 단어다. '단골'은 전라도의 세습 무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한다. 특정 '단골', 즉 무당을 정해 찾아가는 풍습에서 유래된 단어인데, 이제 무당을 정해놓고 찾아가는 일이 없으니, 원래의 의미에서 '무당'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특정 무언가를 정해놓고 찾아가는 풍습'이라는 뜻만 남았다.
요즘 나는 '단골'이라는 단어가 불안하기만 하다. 특정 무언가를 정해놓고 찾아가려면 오래오래 남아있어야 하는데,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어, 여기에 분명 카페가 있었는데. 어디 갔지. 김밥집 잘 되지 않았나? 왜 사라졌지? 자주 가던 복국집이 사라지고 맘스터치가 들어섰을 때, (내 기준) '개미집'보다 맛있는 낙지볶음집이 사라졌을 때 나는 어딘가 허망함마저 느꼈다. 왜 없어진 거야?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시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걸.
세월이 흐르다 보면 단골의 의미가 또다시 바뀌게 될지 모른다. '특정 무언가를 정해놓고 찾아가는 풍습'에서 '특정 무언가'라는 말이 빠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게 너무 빨리 바뀌면, 단골이라는 의미마저 변질되어 버리지 않을까. 아니면 단어 자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