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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Jul 04. 2022

내가 기억하고 나를 기억하는

<단골>

 단골이라는 단어는 퍽 다정하다. 요즘처럼 우후죽순 생기고 사라지는 가게들 속에, 마스크를 쓰고 마주쳐도 눈인사로 사장님을 알아보고 그도 나를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사장님은 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 맥주를 따라 주고, 늘 시키던 메뉴를 준비해 주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앞에 앉아 안부를 묻고 잠깐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관계. 물론 여러 번 방문했기 때문에 단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게도 있겠지만 혼자만 기억하는 것은 아무래도 쓸쓸하기 때문에, 단골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머쓱하다. 


 자취를 하고서부터는 이 년의 계약 만기를 채우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곤 했다. 그래서 단골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게를 만드는 게 조금 더 어려워졌다. 생활비를 절약해야 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맥주도 집에서 마시고, 머리도 분기에 한두 번 자르러 가고, 음식도 해서 먹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커피도 잘 마시지 않고, 정기적으로 뭔가를 사지 않고, 장을 보더라도 식자재마트나 큰 마트를 주로 이용했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사장님 만들기가 참 어려웠다. 혹 그런 가게가 생겼다 치더라도 영 붙임성이 없어 몇 번 쭈뼛대다 자연스럽게 가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나에게 단골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가게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기억을 뒤져보면 단골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가게들은 몇몇 있었다. 


 나의 첫 단골집은 학교 앞 문방구였다. 요즈음의 문방구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이십 년 전 즈음에는 문방구 아줌마가 늘 우리보다 준비물을 더 잘 알았다. 어느 반이 음악 시간에 소고가 필요한지, 이번 주 미술 수업에는 수채 물감이 필요한지, 크레파스가 필요한지 같은 것들. 그때는 지금보다 학생 수도 훨씬 많았을 텐데, 아줌마는 우리의 얼굴과 이름을 다 알고 있었다. 출석 체크하듯 문방구에 들르면 필요한 것들이 죽 늘어놓여 있었고, 아줌마는 우리의 얼굴을 보고 필요한 준비물을 바로 건네주었다. 깜빡하고 빈손으로 등교한 날이면 외상을 달아 놓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고 나서 피아노 학원 봉고차를 기다리는 곳도 문방구 앞이었다. 작은 평상 위에 누워 달콤한 얼음 덩어리를 핥아먹거나 뽑기를 하고 작은 게임기 앞에서 시간을 때웠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단골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곳이 정말 손꼽기 어려운데, 붙임성 좋은 숩과 함께 살면서 종종 가는 스시야, 이자카야가 생겼었다. 숩이는 사장님들과 허울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나는 숩의 언니 자격으로 앉아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던 곳. 밤에 슬리퍼에 운동복 차림으로 쓱 나가 들를 수 있는 거리에 그런 술집이 있는 것은 퍽 복 받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성향이나 패턴이 급격히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단골 가게 만들 일은 쉽지 않겠지만 오랫동안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가게가 생긴다면 삶에 소소한 즐거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그런 운명의 가게를 만날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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