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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Jul 18. 2022

감출 새 없이 좋은

<선물>

얼마 전 시집을 추천하는 트윗을 우연히 보게 됐다. 이런 날씨엔 꼭 이 시집이 제철이라며 격하게 추천하는 글이었는데, 추천하는 이의 태도에 한 번 웃음이 났고 몇 글자 안에 듬뿍 들어있고 잔뜩 묻어있는 진심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어떤 좋은 무언가를 추천하는 기분은 그것 자체로 어떤 선의이고 선물이 아니었을까.


어떤 내용이고 어떤 구절이 적혀있는지도 모르면서 덜컥 추천받은 시집을 구매했다. 트윗을 보자마자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집을 잘 읽지 못하지만, 시집을 참 좋아하는 사람에겐 좋은 선물이 될 터였다. 선물은 무사히 도착했고, 잘 읽고 있다는 답변이 들었다. 그것을 충분했다.



또 어떤 날에는 불쑥 LP를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은(비싼) 턴테이블을 구매한 친구의 소식을 들었었기 때문이었는데, 플레이어는 있으면서 LP는 딱 한 장 있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LP 한 장을 친구의 집으로 보냈고, 턴테이블에서 무사히 재생되고 있는 LP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LP는 막상 내가 사려고 하면 비싸고 금방 뒤집어줘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지만 선물하기엔 좋은 물건이다.


웃겼던 것은 이유 없이 생각나서 보낸 선물이었는데 상대방은 생일 선물로 착각했다는 지점이다. 생일 며칠 전이었기 때문에 그도 그럴 만했고, 나는 생일 알람이 뜨지 않기 때문에 몰랐던 일이었다. 하지만 겸사겸사 생일 선물인 셈 치기로 했다. 내년에는 잊지 않을지도 모른다.




해외여행을 다니곤 하던 시절에는 외국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한국으로 엽서를 써서 보내고 선물을 트렁크에 가득 싣고 돌아오는 일이 잦았다. 그것은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서적이기도 했고, 음반이기도 했고, 술이기도 했고 가구이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기쁨은 감출 새 없이 새어 나온다는 점이 좋았다.


보통 선물을 골라 사는 날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방의 생일, 크리스마스 혹은 어떠한 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 그런 날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어떤 선물을 골라야 할지 고심해야 했고, 당일이 다가오는 것은 때로 어떤 마감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선물을 고르는 것은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기대를 받는 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선물은 이렇듯 아무 이유 없이(이유는 있다. 내가 상대방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문득 건네는 선물이다. 예상치 못한 때에 오다 주웠다는 듯 던지는 선물이 좋다. 상대방은 꽤 당황스러울지도, 놀랄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는 좋다. 그럴 때마다 내 이름 중 한 글자가 베풀 선(宣) 자를 쓴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한다. 그래서 이토록 선물하기를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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