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 만난 사이>
퇴사를 한 후로 직급과 역할이 확실한 단체에서 일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꾸려나가고 있는 우리의 작은 회사는 아직 3명의 대표뿐이고, 가까운 시일 내에 새로운 인력이 충원되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조율하려니 때때로 말들은 많아지고 결정은 늦어지고 끝이 나지 않은 대화를 일단 미뤄놔야 할 때도 있지만 일로 만난 사이가 아니니 또 미뤄둔 대화들이 관계를 어지럽게 만들진 않는다. 우리가 일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역할을 가진 협력업체의 사람들이다.
협력업체는 결국 갑과 을의 관계로 정의된다. 조금 더 친한 업체가 생길 수도 있고, 여러 번 만나 개인적인 사정을 알게 되어 친숙해지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결국 계약서 상에 적힌 대로 갑이 을에게 일정 업무 혹은 작업을 요청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정 사안이나 시기를 넘길 때마다 나는 일하기 좋은 협력업체 사람이었는지, 상대방은 또 다음에 함께 하고픈 협력업체였는지 잠깐씩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지만 명료한 답이 땅땅 결론나진 않는다.
우리는 견적이 다른 업체들보다 비싸더라도 우리가 일한 만큼의 값을 받으려고 한다. 대신 그만큼 더 확실히 아주 작은 부분까지 챙길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 도면과 계획안을 보고 설계비에 비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견적서부터 요청하기 때문에 우리가 견적과 함께 업무범위를 아무리 길게 늘어놔도 가격에서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평가받을 때 좋은 업체가 되려고 하니, 일 자체의 시작이 어렵다.
우리가 결정하는 협력업체들이라면 견적도 견적이지만 소통이 가장 중요시된다. 아무리 저렴한 가격이어도 연락이 제대로 안 된다면 속이 터져서 함께 일을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요청하는 사안들은 보통 이제껏 본 적 없는 형태이거나 방식이 많기 때문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일이 산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로 만난 사이라면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해 주는 것, 일정을 맞추는 것 혹은 변경된 일정을 고지하는 것, 부재중 통화에 콜백을 주는 것.
이제 막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동생 민아는 때때로 저녁때 나를 붙들고 한탄을 늘어놓는다. 일본에서 일하던 방식과는 많이 다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껴서 잦은 소통을 이어나가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스트레스가 사람으로부터 오는 모양이었다. 여러 명의 상사가 각자 다른 업무 지시를 내릴 때, 시킨 대로 했더니 결과물이 원하던 바가 아니라고 할 때, 은근하고 미묘한 단어의 배치로 이뤄내는 회사 내의 비방을 눈치채게 될 때, 연락이 도통 닿지 않는 협력 업체와 연락은 잘 되지만 일을 제대로 못하는 협력 업체들까지. 눈에 힘을 주고서 열을 펄펄 내는 민아에게 나는 너무 힘쓰지 말라고 말한다. 일로 만난 사이니까 스트레스받으면 손해라고, 그저 그러려니 하라고. 아직은 조금 어려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