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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Mar 18. 2023

바로 앞의 눈길만 보고 있으면 된다

시가고원 스키 여행


시가고원에 도착하는 데에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새벽같이 집을 나왔는데, 해가 모두 지고 나서야 숙소에 짐을 옮길 수 있었다. 일본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는 것은 비행기로 1시간 40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 나고야에서 나가노 현의 시가고원까지는 버스로 5시간을 달려야 했다. 분명 봄이었는데, 시가고원에 내렸더니 거긴 아직 눈이 쌓인 겨울이었다.


나가노에서는 1998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호텔 지배인 분은 우리를 버스로 태워다 주며, 당시 동계 올림픽이 열렸을 당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의 말투와 제스처에서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그의 뒤로는 눈 덮인 산맥이 굽이치고 있었다. 자랑스러울 만도 했다. 나는 조금 질투가 났다.


베이스캠프는 해발 1700미터에 위치해 있었다. 리프트를 타면 2000미터 넘는 곳까지 올라갔다. 한라산이 1947미터라는데, 높이만 따지자면 한라산 정상 언저리에서 잠을 자고 리프트를 타고 한라산을 넘어 올라간 셈이었다. 시가고원 산맥 중 하나인 요코테야마는 해발 2305미터다. 시가고원엔 여러 스키장들이 밀집되어 있는데, 우리는 3일 통합 패스권으로 탔다.



단순한 일상이었다. 아침과 저녁이 호텔에서 제공된다. 7시에 일어나서 7시 30분에 밥을 먹는다. 씻고 8시 반에서 9시 즈음에 호텔 바깥으로 나온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스키장이 시작된다. 스키장 곳곳에 있는 레스토랑 중 한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시간을 잘 맞추지 못할 수 있으니, 보일 때 먹는 편이 좋다. 대부분의 리프트는 4시 30분에 마감된다. 그때까지 호텔로 돌아와야 한다. 호텔로 돌아올 수 있는 리프트를 타지 못하면, 꽤 곤란할 수 있다.


저녁은 5시 30분부터 먹는다. 6시가 조금 넘어 저녁을 다 먹고, 사우나를 하고 방으로 돌아오면 다음 날을 위해 이곳저곳 마사지를 한다. 이때를 위해 한국에서 마사지 건을 챙겨갔다. 공항에서 몇 번이나 이게 뭐냐고, 꺼내보라고 했다. 총처럼 생기긴 했다. 이름도 마사지 건이니까.


3일 동안 아주 일찍 잠들었다. 하루 종일 바깥에서 움직였더니, 온몸에 힘이 쭉 빠져있다. 근육은 팽팽하게 부풀어 피곤하다고 소리친다. 분명 뭔가를 하려고 이것저것 챙겨갔는데, 하나도 건들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피로를 풀기 위해서인지 초저녁부터 잠들었는데도,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잤다.



똑같은 생활의 반복인데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3일을 꼬박 스키만 탔는데도, 우리는 시가고원 슬로프들을 모두 타보지 못했다. 계속 새로운 코스로 탔는데도 큼직한 스키장들을 위주로 돌아보는 것이 한계였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큰 자극이었다. 리프트로 이동하는 거리를 포함해 하루에 50km씩 움직였다.



3일 동안 날씨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눈이 내려 눈을 뜨기 어려운 날도 있었고, 하늘이 새파랗게 맑아 후지산이 보일 것 같다고도 했다. 어떤 날은 구름이 내려와 구름 속에 갇혀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시야가 안 좋은 날도 있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때도 있었지만, 산속에 우리만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나마 눈을 가르고 지나간 자국들이 있어, 다른 사람들이 지나갔던 길이구나 알게 됐다.



눈이 정말 엄청 많았다. 아주 가끔 제설기를 발견했고, 대부분의 스키장에는 제설기가 없었다. 자연설만으로 스키장이 운영됐다. 정설이 되지 않은 슬로프에서는 스키가 눈 속으로 푹푹 빠졌다. 달리다가 눈 속에 스키가 박혀서 그대로 엎어졌던 적도 몇 번 있다. 그런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푹신한 이불 위에 몸을 던진 것 같은 느낌에 웃음부터 나왔다.


한국 스키장에서는 리프트에서 노래가 흘러나오곤 하는데, 시가고원에서는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주 조용하고, 스키가 눈을 가르는 소리만이 들린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서 좋다. 내가 밟을 바로 앞의 눈길만 보고 있으면 된다.



시가고원에서 인상적이었던 점들

- 시가고원 스키장 리프트엔 때때로 안전 바가 없다. 안전바가 없으니, 그대로 앉아서 내릴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것이다. 뒤돌아 보기도 무섭다.


- 스키장에 안전을 위한 펜스가 없다. 가끔 정말 위험한 절벽 앞에는 해골 그림이 그려져 있다.


- 스키장의 고도에 따라 다르지만, 5월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래서 선수들은 전지훈련을 하나 싶다.


- 오래전 만들어진 곤돌라는 지금 보면 아주 귀엽다. 4명만 타는 곤돌라는 진짜 작다. 올림픽 때 만든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대로 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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