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일
오래전부터 나에겐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구체적인 목표보다는 그저 내 키보다 훨씬 깊은 물속에 들어가게 되면 자유로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부력으로 인해 옅어진 중력과 온몸에 닿는 물의 마찰로 인해 느려진 움직임은 꼭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나 보통 수영장은 안전과 비용의 문제로 1.2M에서 1.4M 내외의 깊이가 일반적이라, 깊은 물속에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얼마 전부터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다.
프리다이빙이라는 스포츠가 낯설다면, 산소통 없이 잠수하는 스쿠버다이빙이라고 이해하면 편하다. 제주도의 해녀처럼 코를 막아주는 물안경과 기다란 오리발만 끼고 바다 깊이 들어가는 스포츠다. 프리다이빙에 대해 설명하면 주변 사람들은 숨을 참아야 하는 것이냐 한 번씩 더 묻는데, 맞다. 숨을 참는 것이다. 숨을 쉬지 못하니 입수 시간은 짧지만, 그만큼 물속에서 자유롭다.
맨몸으로 물에 들어가기 때문에 가만히 얼마나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는지 기록하는 스태틱(STA)은 프리다이빙의 가장 기본적인 종목이 된다. 스태틱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몸과 마음을 이완하는 것. 온몸의 힘을 빼기 위해 손가락과 발가락 끝의 감각을 느끼면서 눈을 감는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울컥 숨을 쉬고 싶은 충동이 올라오는데, 그것을 몇 번이고 참아내며 물속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려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안해지려는 마음에 지속해서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몸은 마치 큰 문제가 생기기 직전인 것처럼 반응하지만, 실제로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올라간 것일 뿐 산호 포화도는 유지되고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 실제로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스태틱을 4분까지 해내야 한다고 하니 내가 아등바등하고 있는 2, 3분 언저리의 기록은 건강에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다. 마인드 컨트롤만으로도 스태틱 기록은 점점 꾸준히 늘어났다.
깊은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귀의 압력을 물속과 맞춰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비행기를 탔을 때 먹먹해진 귀에 코를 막고 공기를 불어넣어 뻥 뚫리게 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수압이 높아짐에 따라 귀의 바깥과 안쪽의 압력을 계속해서 인위적으로 맞춰주는 것이다. 압력 평형이 가능하다면, 그때부턴 순차적으로 도달 가능한 수심을 늘려나가기 시작하는데 5m부터 시작하여 20m, 30m까지 도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깊은 물속이 두려워 겁을 먹으면, 몸은 바짝 얼어 버린다. 조급해지면 숨이 금방 찰뿐만 아니라 압력 평형도 되질 않는다. 그러니 조금씩 물속으로 나아가며 다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건넨다. 겁과 불안은 발목을 붙잡을 뿐이다.
프리다이빙은 내가 겪고, 알고 있는 모든 스포츠와 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것 같은 운동이다. 격렬한 움직임과 심박수, 팽팽한 긴장과 집중이 주요한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마음을 차분히 하는 것이 곧 기록이 되고 성과가 된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나는 나에게 괜찮다고, 조금 더 해도 된다고 불안이 일 때마다 말한다. 이는 일상을 살아나가는 데에도 좋은 연습이 된다.
일이 의도대로 풀리지 않아 마음이 무거운 순간들이 온다. 흡사 물속에서 숨을 참을 때와 같은 답답함이 직업으로서의 일을 수행할 때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도, 하다못해 출퇴근의 일상 속에도 곳곳에 자리한다. 다이빙을 접하고 나서부터는 그럴 때면 습관처럼 나 자신에게 괜찮다고 말하려고 한다.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 몸의 산소가 부족하지 않은 것처럼 내 불안한 상상이 곧 현실이 되진 않으리라고. 힘을 빼고 겁을 먹지 않으면 물속에 더 오래, 깊이 머물 수 있는 것처럼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먹는 연습이 물밖에서도 역시 필요하다. 그러면 더 멀리 깊이 나아갈 수 있다.
월간에세이 2023년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