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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pr 26. 2023

멕시코에서 만난 햇빛

<햇빛>

공항의 마지막 문을 열고 나서자 따끈한 공기가 몸을 감쌌다. 비행기는 마트의 야채 칸처럼 흰색의 차가운 수증기를 뿜으며 5시간을 날아온 참이었다. 꽁꽁 싸매고 있던 바람막이를 드디어 벗고 반팔 차림이 되었고, 아마 난 그 순간부터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멕시코의 햇빛은 따끈하게 살결에 내려앉았다. 아직 본격적인 여름이 아니라서 그런지, 예상보다 뜨겁거나 따갑지 않았다. 그보다는 닿는 모든 것들의 색깔을 빛나게 했다. 채도 값을 한껏 올려놓은 것처럼 색들은 모두 각자의 빛으로 찬란했다. 멕시코의 색은 아마도 햇빛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색만 또렷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햇빛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어 형태를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했다. 그림자는 그 속의 것들을 감추기도 했지만, 그림자 바깥의 것들을 드러내는 역할도 동시에 하기 때문이었다.





물속에 들어가자, 햇빛은 더 이상 다른 무언가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존재가 아니었다. 살결에서 느껴지는 따듯함으로, 어둡게 내려앉은 그림자의 대비로 알 수 있었던 햇빛의 존재는 물속에서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수면을 통과하며 햇빛은 눈에 보였다. 손에 잡힐 듯했다. 수많은 햇빛의 직선은 한순간도 멈춰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황홀했고, 말 그대로 홀린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들이 물속에 있었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햇빛을 맞으면 눈앞은 새하얘졌다. 눈 부신 것도 잊고, 아른거리는 햇빛을 그대로 쳐다봤다. 물속에서 숨만 쉴 수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그 안에 머물 수도 있었다. 더 오래 있고 싶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티 없이 맑은 바닷속에서 계속 수면 위를 바라봤다. 쉽사리 질릴 풍경이 아니었다.




멕시코에서 어깨와 등을 내놓고 지낸 지 이틀 만에 내 등은 말 그대로 빨간색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입고 있던 수영복의 라인이 내 등에 그대로 남았다. 멕시코의 햇빛에 면역이 없던 피부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선크림을 발랐는데도 완벽히 막아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발랐기 때문에 이 정도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표면이 따끔거리는 것을 너머 살갗이 아플 지경인데도, 햇빛에 어깨와 등을 내놓고 물속에 들어가는 일을 멈출 순 없었다. 멕시코의 햇빛은 내 등에 그림을 그려놨다. 여행을 같이 갔던 사람들은 수영복을 얼른 벗으라 농을 친다. 아마 이 수영복을 벗는 데에는 1년 정도가 걸릴 것 같다. 경험상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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