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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ug 17. 2023

슬픔의 기억을 담는 그릇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데, 슬픔이 찾아오는 날에 나는 오히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곳으로 도망을 친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나의 슬픔이 잦아들기까지 그저 마냥 기다린다. 그것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이고, 또 기억에 새기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어 공감을 받으면서 슬픔은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된다. 그것은 슬픔을 소화하는 또 다른 과정이고, 과거의 기억으로 남기는 방식일 것이다.  

   

각자 슬픔을 견디고 이겨내는 방식이 이처럼 다른데, 많은 죽음이 있었던 곳에서 건축은 어떤 모습으로 과거를 기억해야 할까. 수많은 천교도들의 처형지이기도 했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하에는 두 개의 큰 그릇이 존재한다. 박스 형태로 공간을 나누어 담고 있는 두 개의 그릇은 마주보는 것처럼 가까이 존재하면서도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다. 아주 어두운 공간을 만들어 내는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을 담아내는 붉은 벽돌의 하늘광장은 무엇을 담고자 한 것이었을까?               




많은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장소     



2호선 충정로 역과 시청 역 사이, 그리고 서울역에서 불과 500m 떨어져 있는 교차로에 자그마한 근린공원이 있다. 그곳은 과거 한양도성 통행로로 쓰였던 서소문이 있던 장소이고 동시에 많은 이들의 사형이 집행되던 처형장이기도 했다. 특히 천주교도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서소문 근처에서는 수많은 천교도들이 목숨을 잃었다.     



수많은 목숨이 스러져간 곳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당시 도로와 철도를 낸다는 명분으로 서소문은 철거되었고 1990년대부터는 중구의 재활용 쓰레기 처리장과 공영 주차장으로 쓰이며 순교자들의 존재는 희미해져만 갔다. 2011년이 되어서야 기존 지상의 서소문근린공원에 더해 순교자들을 기릴 수 있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사업이 시작되었고, 2019년 개관하였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지상을 온전히 근린공원으로 내어주고, 지하 4층 규모로 지하에만 존재한다. 공원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경사로로 한 걸음 한 걸음 지하로 내려가는 경험은 마치 땅속 깊이 묻힌 역사로 다가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도 천천히 기억을 새기며 오라는 건축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가장 어두운 그릇콘솔레이션 홀     


우리는 위로와 위안을 빛이 아닌 어둠 속에서 찾기도 한다. 눈이 부신 밝은 공간보다 차분히 가라앉은 어두운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히 눈을 감고 쉴 수도 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 존재하는 두 개의 대공간 중 하나인 콘솔레이션 홀은 아마 사람들이 어둠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콘솔레이션 홀을 감싸는 거대한 벽은 빛을 흡수하는 것처럼 어두운 철판들로 마감되었다. 이 철판들은 서로 단단하게 맞닿은 상태로 직육면체의 형태로 만나 기둥 없이 공중에 띄워져 있다. 접근을 막는 어떠한 장애물도 없지만, 방문객들은 띄워져 있는 거대한 벽을 통해 콘솔레이션 홀이 다른 공간임을 인지한다. 바깥과는 달리 어둠이 내려앉은 홀은 죽음을 기리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방문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휴식의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콘솔레이션 홀에는 박해 시기에 순교한 다섯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있으며,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굴뚝과 같은 기둥이 자연광을 비춘다. 4면을 모두 감싸고 있는 거대한 벽의 내면에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방문객에게 전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한다.              



 

하늘을 담는 붉은 벽돌의 그릇     



가장 내밀하고 깊은 공간이었던 컨솔레이션 홀의 건너편에는 가장 밝은 공간인 하늘광장이 자리한다. 내부의 낮은 천장을 거쳐 맞이하는 18m 높이의 붉은 벽돌 그릇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가장 강력한 공간감을 선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4면의 벽면과 바닥을 모두 붉은 점토 벽돌로 마감하여 묵직한 위압감을 느껴지게 하는 것과 동시에 시원하게 뚫려 있는 하늘은 해방감마저 느껴지게 한다.     



벽돌은 다른 방법 없이 오로지 한 장 한 장 쌓아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서소문성지의 역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작은 조각의 건축 재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하늘을 만날 듯 공간을 감싸 안고 있다. 방문객들은 이곳을 산책하며 명상을 하기도 하고, 여러 행사가 이뤄지는 장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혼자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죽음을 기억하고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이 꼭 한 가지로 완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두 개의 그릇으로 담아내고 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담아낸다. 어둡고 고요하게, 또는 밝고 대범하게.




샘터 2023년 8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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