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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26. 2023

당신을 위한 숲 속의 휴식처

유리트리트

일상에서 벗어나 숲의 절벽 앞으로


도심에서 높은 빌딩들이 우거져 세워져 있는 골목 사이를 걸을 때면, 마음이 일렁인다. 내 몸보다 훨씬 큰 무언가 앞에서 괜히 압도당하는 기분이 들면서, 고개를 들어 빌딩의 꼭대기를 바라보다 빌딩 사이 바람을 헤치고 걸을 때면 경외심마저 든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일렁임이 드는 것은 꼭 도심에서 뿐은 아니다. 우리는 쉬이 볼 수 없는 커다란 자연 앞에서도 마음이 슬그머니 움직인다. 간지러운 기분을 느끼면서 자연에 눈길을 빼앗긴다. 무심한 듯 푸르게 흐르는 계곡물 앞에서, 절벽 위에 빽빽하게 심겨 마치 하나의 거대한 추상화처럼 존재하는 숲의 모습을 목도할 때 말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바쁘게, 또 정신없게 보내게 되는 일상에서 하루라도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이러한 비일상의 경치를 바란다. 계곡과 숲 속을 실컷 누릴 수 있는 자연환경을 찾아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우리도 모르게 받고 있었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에 우리는 유리트리트와 같은 곳을 찾는다. 강원도 홍천군 대곡리, 널따란 하천과 높은 둔덕을 마주한 이곳, 마을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유리트리트는 조용히 휴식을 찾아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정성스레 깎아낸 단단한 조각들처럼


조각은 애초에 큰 덩어리였던 거대한 바위를 깎아내는 단계를 통해 완성된다. 큰 구조를 완성하고 나면, 그 이후부터는 몇 번인지 쉬이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횟수로 돌을 깎아가며 최종의 형태를 구현한다. 원래 하나의 바위였기 때문에 여러 재료가 결합되는 일은 없다. 속이 꽉 찬 단단한 조각은 몇 천 번, 몇 만 번의 두드림을 간접적으로나마 보는 사람에게 전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소리 없이 쌓여 하나의 작품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곽희수 건축가의 건물들은 마치 콘크리트로 조각된 작품들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건축은 조각과 완성되는 방식이 전혀, 처음부터 끝까지 다름에도 조각과 같은 감동을 사람들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유리트리트의 건축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콘크리트 건물을 만드는 방식은 사실 조각이라기보다 가열된 액체를 미리 준비되어 있는 형틀에 부어 넣어 그 형태를 굳혀 완성하는 주물에 더 가깝다. 목재 합판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거푸집을 현장에서 원하는 형태로 맞춰 빈틈없이 결합한다. 그리고선 액체 상태의 콘크리트를 부어 며칠간 하중을 버틸 만큼 단단해 지기를 기다린다. 건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제품들보다 훨씬 거대하므로, 일정 높이만큼 나누어 콘크리트를 부어야 한다.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만드는 방식이 다름에도 다양한 각도로 자유롭게 뻗어 있는 벽과 지붕은 유리트리트를 콘크리트로 빚어진 하나의 조각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지붕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벽은 경사를 따라 사선으로 올라간다.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특성상 이질적인 재료와 재료가 만나면서 만들어지는 경계선들이 모두 생략되었다. 건물은 매끈하게 한 덩어리로 읽힌다. 보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것은 회색의 단단한 콘크리트와 그 사이를 투영하고 있는 유리뿐이다. 형태의 자유로움은 물론, 이러한 재료의 간결함이 유리트리트를 조각처럼 인지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닐까.




자유로운 형태로 얽혀 절경을 향해 뻗어나가는



크게 세 개의 숙소동으로 이루어진 유리트리트는 언뜻 보기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건물인지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단순히 실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을 세우고, 지붕을 얹히는 것뿐 아니라 건물에서 뻗어 나온 벽들은 건물 사이를 유기적인 형태로 잇는다. 하나의 마을처럼 연결되어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투숙객들은 콘크리트 벽의 안내를 받아 여러 공간을 기웃거리며 의도된 동선을 탐험한다. 콘크리트 벽을 지나 방향을 달리하면, 어떠한 모습이 우리를 맞이할지 쉬이 예상하기 어렵다.



유리트리트에는 총 9개의 객실이 있고 두세 개의 객실이 하나의 건물을 이루고 있는데, 모두 동일하게 맞은편 계곡 쪽으로 목을 쭉 빼고 있는 모습이다. 2층의 객실은 계곡과 숲 방향으로 기둥 없이 띄워져 있다.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고정되어 있는 캔틸레버 구조다. 유리트리트는 2층의 객실 구조를 이용하여 건축물이 둥둥 띄워져 있는 것과 같은 그림을 연출해 냈다. 묵직한 건축물이 자유로이 띄워져 있는 연출은 이곳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중력을 이겨낸 것과 같은 기이한 쾌감을 선사한다.



객실 안으로 들어와 투숙객들은 창을 통해 계곡 건너편의 빼곡한 숲을 바라본다. 소리산 줄기, 사리골 계곡이라고 불리는 해발 100미터의 수직 절벽은 고작 40미터의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절벽을 가득 채운 나무들은 수많은 점이 찍혀 있는 점묘화처럼 풍성한 풍광을 만들어 내어, 객실 안쪽까지 깊이 전달한다. 그 어떤 명화도 바람에 따라 흩날리고 계절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수직의 숲을 감히 구현해 낼 순 없을 것이다. 커다란 창 뒤로 빼곡한 녹색의 추상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풍경에 더 가까워지고자 건축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숲에 다가가려 했을 것이다.




행위를 위해 오르고 내리는 경험


공간과 공간을 구분 짓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은 벽과 문을 통해 공간을 나누는 것이다. 바닥과 천장을 잇는 벽을 쌓아 하나의 공간을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곤 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법으로 공간을 구분할 수는 없을까.



유리트리트는 높낮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유리트리트가 감싸고 있는 마당에서 객실에 들어가기까지 모두 계단을 통해 낮은 언덕을 오르듯 계단을 거쳐야 한다는 점부터가 그렇다. 3개의 건물 모두 주변 지형에 따라 다른 높이에 지어진 건물이 되었다. 유리트리트는 2개 층으로 이루어진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9개의 객실은 모두 다른 높이에 있다. 다른 방향으로 걸어, 다른 개수의 계단을 올라야만 정해진 객실로 입장하게 된다. 어떤 객실에 묵느냐에 따라 조금씩 투숙객들은 다른 높이에서 바깥을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실내 공간을 구분하는 방식 또한 높낮이를 이용했다. 이를 테면 침실은 거실과 주방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 다락 혹은 복층처럼 심한 높이차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객실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3단, 높아봤자 10개의 계단보다 낮은 높이차로, 사람의 키보다 낮은 높이로 공간은 구분된다. 완벽한 단절은 아니나, 하룻밤 동안의 휴식 시간이라면 그 정도의 분절로도 충분할 것이다. 거실이나 침실에서도, 창밖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연속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건축가는 벽을 세우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잠시 멈추어 쉼, 리트리트



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다만 자연환경뿐은 아니다. 편안하게 쉬기 위해서는 객실 내부에서의 쾌적함과 더불어 프라이버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호텔이어도 벽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전해지는 옆방의 소리와 현관 밖 복도의 소음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라면 마주하는 객실의 창호를 통해서 건너편 객실의 내부 모습이 슬쩍 보이는 때도 있다. 유리트리트는 건축의 거리를 띄워두는 것과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진입하는 현관과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심겨있는 조경, 그리고 콘크리트 담장을 이용해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호하고자 했다.



또한 일반적인 스테이보다 넓은 객실을 제공하는 유리트리트는 친구와 연인뿐 아니라 가족들끼리 함께 와도 좋을 곳이다. 특히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영장 외에도 객실마다 마련된 수영장 혹은 자쿠지를 통해 일상에서는 어려웠던 휴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모든 객실에서 체크인 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자쿠지에 따뜻한 물을 받아 기다리고 있으며, 편의를 위해 수영장과 카페를 포함한 리셉션 동에서 다이닝룸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저녁이 되면 원하는 투숙객에 한해서 계곡 앞 바비큐를 즐길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니, 계곡을 따라 부는 바람을 맞으며 한가로운 저녁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오니 산새의 색채가 변해간다. 이제 점점 붉고 노랗게 물드는 낙엽의 계절이 완연히 도래할 것이다. 유리트리트에서의 하룻밤은 다른 계절을 상상하게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더라도 계곡과 수영장을 오가면 더위는 금세 잊힐 것이다. 추운 겨울이어도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희게 물든 산과 살얼음을 동동 띄운 계곡물 앞을 서성이면 기분 좋은 고요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먼 곳에 온 것 같지만, 유리트리트는 고작 자동차로 한 시간 반 거리였다. 누군가는 출퇴근 시간에도 보내는 그 한 시간 반 만에, 다른 계절의 날들을 떠올리게 하는 나만의 휴식처에 도착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오래 달리기 위해서 쉼은 중요하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그래서 후퇴와 퇴각을 의미하는 영단어 리트리트(retreat)는 오로지 부정적인 의미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에게는 리트리트가 필요하다. 유리트리트는 명확히 건축의 의도를 이름을 통해 나타낸다. 자연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누리면서 불편함 없는 온전한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다정한 마음을 당신에게 전해온다.




한국관광공사의 요청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최종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https://me2.do/5LuHeh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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