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의 성
매달 22일에는 우리 동네 모든 문화체육센터의 강좌가 열린다. 이번 목표는 내가 아니다. 엄마는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했고, 나는 엄마를 수영 강좌에 넣어주고 싶었다. 필요한 것은 굵직한 딱 한 방. 일단 회원으로 등록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나는 1년이 넘는 수영 강좌를 수강하는 동안 몸소 체득했다. 거대하고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풀 안으로 일단 입장을 할 수만 있다면, 그 후로는 강좌 시간을 바꾸거나 다음 달 강좌를 재등록하는 일은 아주 사소한 소일거리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가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도움닫기 발판 역할을 해주어야 했다.
11월 22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며칠이 지나 있었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노려볼 수가 없었다. 12월을 다시 기약하며 달력에 적어 넣었다. 엄마 수영 등록날. 그리고 12월 21일 저녁, 달력을 살펴보다 다음 날이 수영 등록 날임을 알았다. 엄마에게 미리 잠들기 전에 경고했다. 엄마, 내일 새벽에 수영장 가서 번호표 뽑아야 해.
수영 강좌를 등록하는 데에 무슨 번호표가 필요한가. 이해 못 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역의 문화체육센터의 강좌를 수강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콘서트 티켓팅보다 더 치열한 티켓팅이 아주 가까이에서도 매달 벌어지고 있음을 쉬이 알기 어렵다.
우리가 노리는 문화체육센터의 티켓팅은 두 가지 경로로 이뤄진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아무래도 노령층의 회원이 많기 때문인지 수강인원의 반은 온라인으로, 또 다른 반은 직접 문화체육센터로 방문하여 등록을 하게 된다. 오프라인은 9시 전부터 미리 와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므로 문화체육센터 내에서 기계로 번호표를 배부한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둑한 새벽부터 미리 와 기다리는 줄이 팝업스토어나 콘서트 외에도 바로 여기 있다.
새벽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렸다. 엄마가 아빠와 함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소리를 들었다. 아빠는 새벽 6시부터 무슨 줄을 서기 위해 가느냐 구시렁거렸지만, 6시에 문화센터에 도착한 엄마가 뽑은 번호표는 23번이었다. 새벽 2시부터 와서 번호표를 뽑았다는 할머니가 앞에 있었다. 재등록한 인원 외의 자리를 다투기 때문에 80명 정원이지만 자리는 오프라인 1명, 온라인 2명만이 남아있다는 이야기를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 이게 무슨 전쟁통인가. 엄마와 아빠는 망연자실하게 그득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온라인 팀인 나는 8시 30분에 컴퓨터를 켰다. 23번을 뽑은 이상, 9시에 가서 다시 등록을 기다린다고 한들 마지막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이제 9시에 열리는 온라인 자리를 노려봐야 했다.
랜선으로 유선 연결된 데스크톱의 전원을 켜고, 크롬 창을 두 개 띄웠다. 하나는 문화체육센터 홈페이지에 서버 시간을 띄워두었고, 하나는 문화체육센터 홈페이지에 로그인한 채 강좌 링크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엄마가 노리는 강좌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직장인들이 퇴근해 오기 좋은 월수금 오후 7시. 혹시 7시 강좌를 실패하더라도, 다른 시간이라도 신청할 작정이었다. 한 달만 고생하고, 그다음 달에 반을 옮기면 된다.
온라인 티켓팅이 잔인한 점은 실패의 순간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9시가 가까워지자 홈페이지 새로고침이 급격하게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쉽게 글자와 이미지들이 파파박 떠오르지 않고, 마우스는 계속 동그랗게 돈다. 때로는 연결이 어렵다는 메시지도 뜬다.
서버 시간이 59분쯤 되었을까. 새로고침을 눌렀더니 비활성화되어 있던 강좌 수강 신청 버튼이 반짝인다. 숨을 잠깐 멈추고 원하는 시간을 찾아 들어가 수강 신청을 눌렀다. 수강 인원이 다 차있다. 다른 시간으로 가본다. 수강 인원이 다 차있다. 이대로 실패야? 나는 뛰는 심장 박동을 느끼면서 다시 신청을 시도한다. 대기를 걸 수 있었다. 대기를 걸었다. 오후 7시, 8시, 새벽 6시. 뭐라도 하나 걸려라. 대기 번호는 7번이었다.
오프라인 팀인 엄마는 문화체육센터에 도착하여 등록을 기다렸으나, 결국 20분 기다린 끝에 퇴각한다. 23번보다 앞에 있었던 번호표들은 많은 수가 수영 강좌를 노리는 듯했으며, 수영 강좌가 마감되었다는 직원의 외침을 들었다고 엄마는 전했다. 강좌를 쟁취하지 못한 온라인 그리고 오프라인 팀은 모두 한숨을 내쉬며 1월을 기약해야겠다며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애써 달랬다.
실패를 온건히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그날 불평을 쏟아냈다. 생활체육을 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게 맞아? 헬스는 다른 사설 업체에 가서 할 수나 있지. 수영은 수영장이 있어야 할 수 있을 것 아니야. 이렇게 수영 등록하기가 어렵다면 수영장을 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야? 한 달에 한 번씩 등록하는 것을 3개월, 6개월 왕창 등록할 수 있도록 만드니까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도 빈자리가 계속 있는 것 아니냐고. 합리적인 의심 아니야?
그리고 문자 메시지가 울린 것은 며칠이 지나서였다. 1월 22일을 달력에 적어두고 다시 심기일전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손목의 스마트 워치에 진동이 울렸고, 미리 보기로 본 문자의 내용은 심상치 않았다. 나는 아침을 먹던 숟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방으로 뛰어갔다. 에이, 설마. 대기 7번이 됐다고?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대기 7번은 돌고 돌아 나에게까지 기회가 온 것이다. 딱 두 자리 남아 있었는데 그럼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반에 간 것이었을까? 더 원하던 시간이 있었던 것일까. 알 게 뭐야. 나는 어리둥절한 가족들의 눈길을 받으며 급히 컴퓨터를 켰다. 일단 결제부터 갈겨야 했다. 카드로 긁고, 결제 완료 문자를 받고 결제 완료 창을 띄워뒀다. 믿기지가 않았다. 이게 됐네? 이게 됐어!
새 강좌의 시작을 하는 날이었던 2024년 1월 3일 수요일 저녁. 나는 첫 수업을 가는 엄마 배웅을 갔다. 그곳은 내가 오래 수영을 다닌 곳이기도 했다. 키오스크로 대체된 카운터에서 어떻게 락커를 배정받는지, 샤워할 때는 뭘 챙겨두면 좋은지, 수영장 안에는 어떤 시설들이 있는지 수업 시간 전에 벤치에 앉아 미주알고주알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체온유지풀이 있으니 따뜻한 물에 꼭 들어가 있어. 미리 수건은 락커에서 빼놔야 해. 선생님이 처음 온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가서 초보라고 하면 돼. 그럼 반을 배정해 줄 거야. 나는 왠지 엄마를 물가에 내놓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가가 맞기도 하다.)
엄마는 무사히 첫 수업을 마쳤고, 재미있다는 소감을 전했다. 수영 2주 차에 접어든 엄마는 음파부터 배웠고, 발차기를 하고, 팔 돌리기를 어설프게나마 하기 시작했다. 다리와 팔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나에 집중하면 또 다른 하나가 안 된다 했다. 그런데 하다 보면 돼, 엄마. 거기 엄마보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도 진짜 많지? 엄마가 어린 편이야. 다 그분들도 계속 하다 보니까 된 거야. 그렇게 나는 엄마를 응원한다. 엄마는 꾸준함으로 승부를 보려고 한다. 엄마의 목표는 가족여행을 가서 나와 함께 바다를 누리는 것이다. 목적지는 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