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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05. 2016

우리 그래도 같이 가자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빠, 자전거를 못 타는 엄마

01 아빠와 엄마


아빠는 원래 운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태권도를 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스킨스쿠버를 했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매 여름에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가 바람이 부는 날이면 윈드서핑을 하러 밖으로 나갔고, 요즘 같은 가을에는 혼자 산을 올랐다. (어제는 산에서 다녀와서 헬스장으로 항했다고 한다.) 겨울에는 어김없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스키를 타러 간다. 겨울이야말로 아빠에겐 성수기다.


반면에 엄마는 운동이라고는 걷는 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학생 시절의 엄마는 오로지 체육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잘 받고 싶어서 반장을 했고, 방학이면 방 안에 책을 쌓아두고 읽느라 하루를 다 보내는 종류의 소녀였다. 마르고 체력이 없어서, 생리통으로 기절까지 하는 가련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지 25년이 넘었다.




02 자전거를 못 타는 엄마


작년에 자전거를 구입했다. 그리고 아빠와 함께 한강 길을 따라 팔당까지 다녀왔다. 날씨는 좋았고, 자전거길에 사람은 없었고, 도로는 달리기에 아주 좋았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도로 옆으로는 강이 있었고, 그 뒤로는 산이 있었다. 바람은 기분 좋게 나를 쓸고 지나갔다. 오르막이 거의 없어 힘이 들지도 않았다.


팔당 근처 자전거 도로
철교


좋은 것은 공유하고 싶어 진다. 엄마에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자전거를 배우게 하고 싶었는데, 그게 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엄마에겐 큰 의욕이 없었고, 옛날에 자전거를 배우다 된통 넘어져 팔을 다친 적이 있었다.


"아빠, 나중에 엄마를 데려오자. 엄마도 좋아할 것 같아."

"그러자."


작년에 아빠와 여러 작전을 짜다가, 그새 겨울이 와 자전거 시즌이 지나가버렸다. 엄마에게 자전거를 배우게 해야 하는 것인지, 엄마를 위해 세 바퀴 자전거를 사주어야 하는지, 아주 고민스러웠다.




03 2인용 자전거


사실 난 2인용 자전거를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다. 왜 커플들이 2인용 자전거를 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씽씽 달리는 것이 좋은데, 전혀 컨트롤을 할 수 없는 뒷좌석에 앉아서 등짝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 싫다. 앞자리에서 보이지도 않는 남자 친구를 짐짝처럼 매달고 달리는 것도 싫다. 남자 친구와 자전거를 타는 것은 좋지만, 한 몸이 되는 것까진 바라지 않는다. 보통 나의 남자 친구는 내가 쌩쌩 달려 나가면, 천천히 가라며 다친다고 뒤에서 걱정하며 쫒아온다.


그런데 얼마 전에 드디어 2인용 자전거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2인용 자전거는 우리 엄마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 뒷좌석에서는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고 발을 굴리기만 하면 된다. 아니, 힘들면 굳이 발을 굴리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앞좌석에 있는 아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팔당역 앞에는 자전거 가게가 줄지어서 있다. 옛 기찻길을 자전거도로로 탈바꿈한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빌리거나, 정비하러 찾아온다. 물론 빌려주는 자전거 가운데에는 2인용 자전거가 있다. 요새는 전기 자전거도 있고, 2인용 전기 자전거까지 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는 2인용 자전거를 한 대 빌렸다. 하루에 2만 원 정도다.


2인용 자전거이지만 헬멧 착용


빌려서 말 그대로 쌩쌩 달렸다. 아빠가 이끄는 2인용 자전거는 단언컨대 2인용 자전거 중에 가장 빨랐다. 2인용 자전거를 족히 다섯 대는 앞질러 지나갔다. 아빠가 엄마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니, 나와 체력이 비슷한 정도로 맞았다.


자전거를 처음 타보는 엄마는 연신 고개를 돌리며,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빴다. 자전거 도로 옆으로 보이는 산과 강, 옆으로 지나가는 다른 라이더들, 자전거 도로 바로 앞에 지어져 있는 여러 건물들까지. 물론 2인용 자전거가 아니라면 안 될 일이다. 나중에 돌아오는 길에는 제법 아빠와 호흡을 맞춰 오르막이 나와도 거뜬히 올라갔다. 2인용 자전거에 헬멧 쓴 사람들은 엄마, 아빠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조차 웃기다고 우리는 즐거워했다.


 


04 우리 그래도 같이 가자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이 세상에 안 되는 것들은 없다. 돌고 돌다 보면 결국 방법은 어디엔가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어렸을 적부터 수많은 "안 돼."를 듣고 자랐고, 또다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안된다고 말한다. 포기는 쉽고 간편하다. 변명은 지척에 널려 있고, 그중 하나를 집어 들면 된다.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 가끔 놀랄 때가 있는데, 바로 이런 시점이다. 엄마와 아빠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쉽게 안된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든 도전하길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아빠는 작년에 영어 학원을 다니며 나에게 영어를 섞어 쓰기 시작했고, 올해에는 외국인 트레이너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단체 PT를 시작했다. 엄마는 올해 처음 T익스프레스를 타봤고 하와이에서는 나와 함께 스카이다이빙까지 했다.


자전거를 타지 못 하면, 뒤에 태우고 달리면 된다. 뛰지 못하면 같이 걸으면 된다. 잘 안 들린다면, 두 번 세 번 다시 얘기해 주면 된다. 추우면 옷을 더 입으면 되고, 더우면 쉬면서 가면 된다. 고생하는 것보다 그래도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가족이 좀 그렇다.





2인용 자전거를 가지고 고성에서 속초까지 자전거를 타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출발 이틀 전, 비가 온다는 예보 때문에 취소되었다. 올해에 가지 못한다면, 내년에는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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