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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Oct 11. 2016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힐 시간

논술을 보러 들어가는 학생을 보고


대학에 들어가면 인생이 끝나는 것 같던 순간이 있었다. 대학의 등급에 따라 나 자신도 결정지어지는 것 같던 나날들이 있었다. 대학에 떨어지면, 그것이 인생의 실패로 생각되던 때는 아마 누구라도 있지 않았을까. 한 가지 잣대로 평가받던 시절이 누구에게나 있었으니까. 한양대 역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북적북적 많았다. 분명 축제는 끝났는데. 그럼 중간고사인가? 그러다가 밥을 먹으러 들어가서 알았다. 두 어깨에 가방을 메고 책을 꼭 안고 아빠와 함께 식당에 들어서는 아이를 보고. 아, 수시 논술 시험 날이구나. 의도치 않게 흘러가는 대화를 들어버렸다. 


뭘 챙겨가야 하지, 아빠?

꼭 가져가야 되는 것만 들고 들어가.

나 좀 떨리는 것 같아. 

화장실은 갔다 왔고? 

괜찮아. 잘 볼 거야.


나는 논술을 본 적이 한 번, 그것도 그리 간절하지 않은 마음으로 본 적밖에 없었지만, 그 후 카페에 온 후에도 시험 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마주하니 마음 한편이 왠지 찡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자신을 던지듯 시험에 임하는 걸까. 이게 끝이 아니고, 결국 단 한 발자국 내딛는 것에 불과한데 이렇게 가족 모두가 학교 앞에서 기도하고 기다릴 정도로 간절해야 하는 일인가. 그들을 대하는 학교의 태도도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시 전형료를 챙겨서 건물 하나라도 더 지으려고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학교마저도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대학이 끝일 것만 같고, 취업이 끝일 것만 같고, 결혼이 끝일 것만 같은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그 모두가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레벨의 대학에 합격했는지도, 초봉이 얼마인 기업에 취업했는지도, 어느 정도 이성과 결혼에 골인했는지가 아니라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자꾸 결국 나를 둘러싼 외형에만 인생을 쏟아붓고 있는 것 같아서, 문득 한양대학교에 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에게 미안했고 그 부모님들을 보면서 우리 엄마, 아빠가 생각났다.


대학에 합격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축하 인사는 그것이 그 대학을 들어갔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한 평도 안 되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스탠드 불빛 아래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 뛰어들 수 있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온몸으로 세상에 부딪힐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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