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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건반을 지나면 물방울 소리가 나

<클래식>

by 선아키

작년, 처음으로 조성진 공연 예매에 참전한 것이 8할은 호승심 때문이었음을 고백한다. 피켓팅*으로 유명한 공연이라 정말 도전하는 마음으로 서버 시간을 켜고 손가락을 풀면서 표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인터파크보다 조금이라도 경쟁이 덜 치열한 곳을 찾으려고 그때엔 티켓링크에 가입해서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성진의 열렬한 팬인 파트너 빔과 함께 도전하기 위해 업무를 멈추고 손에 땀을 쥐며 초를 세다 정각이 되는 그 순간 클릭했다.

*피켓팅 : 피 튀기는 티켓팅의 준말로, 인기가 많아 표를 구하기 아주 어려운 공연 예매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고, 초심자의 행운이 강력하게 들어간 덕분에 나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지휘자 정명훈의 오케스트라 공연 예매에 성공한다. 심지어 1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 이선좌**가 떴지만, 다음 클릭에서 성공했다. 유난히 표가 많이 남았던 구역을 집어냈다. 그 후 한 시간 동안은 믿기지 않는 승리감에 도취해 끊임없이 트위터를 돌아다녔다. 트위터에는 조성진 공연을 예매하지 못한 조성진 팬들이 아주 많았고, 그들의 좌절한 트윗을 보며 나는 조금 (아니 많이) 기뻐했다. 그것이 작년의 일이다.

**이선좌 :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의 준말로, 선택한 좌석을 이미 다른 사람이 골라 다른 좌석을 선택하라는 오류 메시지이다. '이선좌가 떴다'라고 표현하고, 재빨리 다른 좌석을 선택해 보아야 한다. 영원히 이선좌만 뜨다 모든 좌석이 매진될 수 있다.



조성진 팬들을 비롯한 클래식 계정들을 여럿 팔로우하고 있는 탓에, 조성진의 국내 공연 일정이 잡히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일이 많았다. 조성진은 현재 독일에 거주 중이면서 전 세계로 공연을 다니기 때문에 국내에 머무르는 날이 아주 적은데, 5월과 6월에는 조성진 공연이 한국에 몰려 잡혀 있었다.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는 듯 예매 일정이 연달아 여러 군데에서 뜨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오케스트라 협연을 봤으니, 올해에는 리사이틀을 보리라 다짐했다. 특히나 올해는 라벨 서거 150주년 기념으로 조성진이 라벨 앨범을 낸 터였다.


초심자의 행운이 지나 여러 번의 예매에 실패했다. 특히 인터파크 예매는 정말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1초도 지나지 않아 클릭했는데도 내 앞에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3,000명의 사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그저 회색 의자만이 가득했다. 이미 매진되었단 뜻이었다. 그러다 내가 간절하지 않기 때문이었는지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조성진 리사이틀 예매에 성공한다. 조성진 공연 예매만 성공하면 대구든 부산이든 가려고 했건만 덜컥 서울 공연을 잡아버린 것이다.




예술의 전당 공연장에는 중앙에 피아노 한 대만이 놓여 있었다. 여러 사람이 아니라, 여러 악기가 아니라 오직 한 대의 피아노와 한 사람만이 무대를 채우는 날이었다. 조성진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백스테이지로부터 나와 자리에 앉았고, 숨을 한 번 내쉬고 연주를 시작했다. 항상 음원으로만 듣던 곡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피아노 라이브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공연은 2번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3시간 동안 이어진 조성진의 라벨 차력쇼였다.


소리를 언어로 조금 더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프로그램 북에 적힌 여러 찬사를 보아도 내 안에 남는 단어는 많지 않다. 그저 조성진의 손이 건반 위를 지나면 물방울 소리가 났다. 때로는 연못에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같기도 했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새들이 목욕하는 물장구 소리 같기도 했다. 계곡이기도 했고, 폭포이기도 했다. 어떻게 피아노에서 물소리가 나? 나는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의아해했다.



사무실에서 빔이 스피커로 틀어주는 클래식을 주로 듣는다. 조성진도 듣지만, 내가 모르는 다양한 연주자들의 곡을 뭔지도 모르면서 듣고 있다. 말하자면 클래식 서당개 몇 년 차. 나도 언젠가 클래식 풍월을 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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